조영남씨 사건에 관한 잡담

 

** 아래는 영상에 사용된 대본입니다 **

 

조영남씨 사건에 관한 정리를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이번 2020년 6월 25일 대법원 판결과 함께 사건의 법적인 결론이 나온 만큼 다시 한 번 이 조영남씨 사건에 관한 정리를 하며 잡담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영남씨 사건은 미술계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어쩌면 대한민국 최초의 전 대중적인 현대미술 토론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데요. 특히나 저는 미술 쪽에서도 '개념미술가'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하고 있다보니, 이 사건의 논란 쟁점이기도 한 '현대미술은 개념이 중요하다.'라는 부분을 두고 저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해주시고는 합니다.

 

일단 본격적인 잡담을 나누기전에 이 사건에 관한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머리로는 '무죄'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유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저에게서 나타나는 이 이성과 감정의 충돌이 조영남씨가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음에도 지금 많은 대중분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런 충돌이 발생하는 이유에 관해 풀어보는 잡담을 해보려고 합니다.

 

조영남씨 사건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여기 들어오신 분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현대미술 속의 작품은 꼭 작가 자신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앤디워홀의 그림을 살펴봐도 스크린 프린팅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면서, 대부분 조수의 손으로 탄생한 작품들이죠. 심지어 앤디 워홀이 총격 사건을 당한 후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앤디워홀이 팩토리라고 불렀던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의 작품은 조수들에 의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영남씨가 대부분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수가 그렸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 당연하게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이죠. 이런 부분들이 ‘미술은 사기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인것처럼 저를 포함한 미술을 바라보는 대중들은 미술가가 꼭 본인의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또 유난히 조영남씨가 조수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내놓으며 약 1억 5천여만원에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에는 납득을 하지 못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미술은 사기다’라는 원래의 인식 속에서 유난히 ‘조영남씨의 그림은 더더욱 사기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그 요인을 파악하면 이 사건의 핵심과 함께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앤디 워홀의 작품과 조영남씨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유난히 ‘조영남씨의 그림’에서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조수를 고용했다'는 사실과 함께 똑같이 조수에 의해 만들어진 앤디 워홀 작품보다 유난히 조영남씨의 그림을 향해 ‘이게 더 사기다.’라는 감정을 가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 제작 스킬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스크린 프린팅 기술과 함께 만들어지고, 그림 속 주제가 계속해서 변해가며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혹은 '손재주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듯, 현대미술 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흐름을 보여주고 있지만, 조영남씨의 그림은 항상 화투라는 주제만을 포함한 오직 손으로 직접 그려낸 그림을 내놓으며 '조용남이라는 '내'가 직접 이렇게 그렸다.’라는 부분이 강조된 전통적인 성향의 작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인데요.

 

간단하게 말해 앤디 워홀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만들었느냐가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겉모습을 가졌다면, 조영남씨 작품의 주된 매체인 그림은 대부분 '당연히 본인이 그렸겠지.'라는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특히나 연예인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얻은 유명세와 함께 더욱 잘 알려진 인물의 그림이라면 이 무의식적인 시각은 더더욱 강력해지는 법이죠.

 

앤디 워홀은 애초에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르며 ‘조수’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떳떳하게 말하는 행보와 함께 ‘온갖 것들을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 만드는 세상에서 굳이 작품을 사람이 만들 이유가 뭐냐.’라는 메세지가 담긴 작품과 언행 등의 일치를 통해 ‘미술은 사기지만, 앤디 워홀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현대미술스러운 딜레마적인 결론을 만들고 있다면,

 

조영남씨의 작품은 연예인으로서 성공한 한 사람이 그림을 전문적으로 내놓고 이를 판매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중은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조영남이 그렸을 것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한 작가가 '그림'이라는 작품을 내놓았을때 가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식인데, 이때 이런 인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조수가 그렸다’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관객은 ‘미술이 원래 사기인건 알았는데, 이건 완전히 사기다.’라는 앤디 워홀 때와는 다른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가 나타나는거죠.

조금 더 깊게 잡담을 파보자면, 미술이 현대미술에 들어서면서 충돌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전통적인 미술을 대표하는 ‘손재주, 장인성’의 의미를 가진 단어 ‘크레프트맨쉽’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생각', '개념'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이디어 혹은 컨셉'이라는 단어의 충돌이죠.

손재주와 장인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성향의 크래프트맨쉽이 강조된  손으로 직접 그리는 그림, 손으로 직접 깍아서 만드는 조각과 같은 매체는 미술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흐름의 한 맥으로 손재주와 장인성을 무기로 삼으며 대중 앞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퍼-리얼리즘처럼 인간이 현실을 묘사하는 능력에 대해 손재주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이런 손재주와 장인성이 강조된 그림을 맣닻드렸을 때, 해당 그림들이 작가 본인에 의해 그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엉??’이라는 당혹감과 의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에 반해 아이디어와 컨셉이 중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나, 데미안 허스트 등의 현대예술가 작품을 본 사람들은 ‘본인이 만들지도 않은거로 재밌는걸 만드는구나’ 혹은 ‘본인이 만들지도 않은게 무슨 예술이야.’등의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런 작품을 가치있다 생각하든, 가치 없다 생각하든 ‘작가 본인이 만들었다’는 생각은 대부분 하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본인이 만들지 않은 것으로 예술이 가능한지에 도전하고 있는게 어쩌면 현대미술의 한 흐름이기도 하니 말이죠. ‘이게 예술이 되냐, 안 되냐’라는 논란성이 또 어쩌면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하나의 생존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영남씨의 그림들은 전통적인 크래프트맨쉽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미술 분야의 느낌과 냄새를 풍기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전혀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아이디어와 컨셉을 중요시하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가진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니 거대한 혼란이 오는 것인데요. 손재주를 강조한 전통적인 미술이나, 아이디어를 강조한 현대적인 미술이나 결국 같은 예술이기에 전통적인 형태의 미술을 내놓으며 현대미술의 특징인 ‘아이디어와 컨셉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미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대중으로서는 그 어울리지 않는 논리에 혼란에 빠지며 ‘역시 정말 사기다!’라는 결론에 치닿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많은 현대 화가들과 과거 르네상스 장인들도 조수들을 고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평생 그림을 그리며 실력을 인증한 후 조수를 고용한 현대화가들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 거대한 성당의 벽과 천장을 통채로 채울 그림과 조각을 했던 장인들의 작업을 비교한다는 것은 애매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또,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을 오직 혼자서 2년에 걸쳐 그렸다는 ‘미켈란젤로’의 업적을 예술계 최고의 업적 중 하나로 꼽으며 ‘혼자서 해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을 보자면, 전통적인 예술에서 ‘작가가 직접했다’라는 사실은 작품의 가치에 기여하는 굉장히 중요한 큰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물론 저는 ‘개념미술가’라는 타이틀처럼 손재주보다는 아이디어와 컨셉을 중시하는 예술을 하고 있는데요. 법원의 두번째 판결에서 조영남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을 보고, ‘아직 한국 사회의 미술에 대한 인식이 이정도이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조영남씨는 어쩌면 도덕적으로는 ‘유죄’이지만, 미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무죄’에 해당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렇다보니 항소를 통해 진행된 대법원 선고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새로운 사실은 또 개인적으로 ‘오...?’하는 꽤나 놀라움 비슷한 기쁜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조영남씨’라는 사실이 ‘미술은 사기다’라는 대중적인 인식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굳혀놓겠구나...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는데요.

 

조영남씨에 관한 지난 몇 번의 정리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이 사건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조영남씨의 유죄, 무죄 유무보다는 ‘미술 작품은 꼭 작가에 의해 만들어져야하는가?’라는 국내 모든 대중에 걸친 한국의 첫 현대미술적인 논란이 하필이면 도덕적인 평가가 좋지 않게 내려지는 현재의 사건이여야 했을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앤디 워홀 작품들이, 영국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이 포함된 예술가 그룹 YBA처럼 실제적으로 아이디어와 컨셉을 중시하며 ‘새로운 현대미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은 작가들에 의해 꽤나 논리적으로 논란이 이뤄졌던 것과는 꽤 큰 차이가 있으니 말이죠.

 

 앤디 워홀의 스크린 프린팅, 데미안 허스트의 입벌린 상어, 트레이시 에민의 침대 작품 등이 만들어냈던 미국과 영국 사회에 걸쳐진 대중적인 토론과는 다르게 전통적인 성향 가득한 그림 작품의 법적인 공방 속에서 ‘현대미술에서 중요한건 아이디어와 컨셉입니다.’라고 말하는 논리의 오류가 존재하는 작품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 속 대중적인 첫 현대미술 논쟁은 현대미술을 해보고자하는 예술가로서 조금은 고개를 떨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최고의 작품은 아이가 일생 처음으로 그려서 엄마에게 건넨 그림이다.’라고 말하며 작품과 예술가는 그 가치로서 위아래를 겨루기가 힘들다고 주장하는 저이지만, 이런 사건처럼 작품이 만들어내는 논란에서 시작되는 대중적인 토론이 미술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하나의 힘이라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저로서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사건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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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