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유식 20회, 미술의 주체와 객체

미술 이유식의 20회에서는 '미술의 주제와 객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주제'와 '객체'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려운 냄새를 풍기는 단어이지만 조금 풀어서 생각해보자면 굉장히 간단한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주로 '미술의 주체'에 대해서 더욱 많이 이야기를 나눠보았던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 내려진 결론부터 말씀드려보자면, 결국 미술의 주체는 '미술가와 관객' 모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미술 작가는 간단하게 미술을 만드는 주체로서 미술에 존재한다면, 관객은 미술 작품을 앞에 두고 보는 주체로서 존재하는데요. 미술 작가는 미술을 만드는 주체로서 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을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 자신도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 재미난 상황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예로 언급한 작품이 바로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서 전시되었던 '리차드 터틀'의 작품이었는데요. 작품 제목이 작가 본인이 혼란이 느껴지는 '나도 모르겠다. 혹은 텍스타일 언어의 짜임'입니다.


리차드 터틀의 작품 '나도 모르겠다, 혹은 텍스타일 언어의 짜임(I don't know. The weave of textile language)'


이 작품의 작가 리차드 터틀은 실제로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오묘한 작품에 대해서 '나도 모른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작품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인터뷰 내용은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불확실함 자체가 작가가 작품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일 수도 있겠는데요.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조차도 모르는 작품 앞에 서있는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참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놓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작가조차도 모르는 작품 앞에서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 관객은 그 행위 자체로서 미술의 주체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설명해보기 위해서 '오크나무(An oak tree)'라는 작품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작가도 모르는 작품 앞에서 관객이 그 작품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와 관객 모두 작품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가능하겠죠.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행위 자체가 우리 모두를 미술의 주체로 만들어주는 요소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풀어본다고 열심히 이야기해보았었는데, 저도 모르는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역시 미술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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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