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유식 14회, 최고의 작품

3개월의 휴식과 갖가지 공지사항을 위한 회차들을 지나 드디어 시작된 정규 14회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최고의 작품'이라는 주제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비슷하게 다뤄본 적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술에서 더 좋고, 더 나쁨을 나누고 따지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실 현대의 미술에서 미술에서 더 좋고 나쁨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가 없죠. 1800년대 이전까지의 예술에서 최고의 작품에 대한 기준은 지배층이 정해놓은 절대적인 기준 혹은 오랜 전통과 관례를 통해 형성된 기준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등의 영향으로 사회의 계급이 무너진 후 시민사회가 들어선 현대 사회에서는 미술의 가치를 나누는 기준에 큰 변화가 찾아오죠. 지배계층이 정해놓았던 기준이 무너지면서 얻은 자유로움과 함께 생겨나기 시작한 영상, 음악, 조형 분야의 완전히 새로운 매체들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모습을 형성해버립니다. 이렇게 짧게는 몇 천년 길게는 몇 만년까지 이어져오던 전통 미술은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을 통해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현대미술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요. 이런 급격한 변화는 현재 진행형의 상태로 아주 흥미진진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많은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와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비평가의 의견이 일반인의 의견보다는 미술의 가치 판단에 조금 더 높은 영향력을 가지고 큰 기여를 하는 듯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면 미술가와 비평가도 결국 자신의 취향을 가진 사회 속 개인들 중의 한 명일 뿐이죠. 어쩌면 미술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관객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회 차는 결국 또 비슷한 이야기를 조금 다른 예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주장하는 부분이 계속해서 같다는 것이 발전이 없는 것인지 혹은 의견이 점점 탄탄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 객관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들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3개월이라는 긴 시간 충전하고 돌아왔으니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14년 9월 21일 네이버 블로그에 최초 작성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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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