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이 있는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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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모양있는 캔버스(Shaped Canvas)'


이 작품은 미국의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모양이 있는 캔버스’라는 작품입니다. ‘모양이 있다.’라는 수식어와 맞게 캔버스의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4개의 모서리를 가진 네모 모양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가진 캔버스들인데요. 캔버스 내부에도 간결한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려주면서 단순함과 반복성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형태의 미술을 잘 완성해낸 작품입니다.


위의 설명을 읽고 있자면 우리는 이상한 모양의 캔버스를 미니멀리즘 등의 설명과 함께 큰 반감 없이 이를 하나의 미술작품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사실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재료에 불과한 캔버스를 요상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를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의외로 그리 오래되지 못 했습니다. 미술 사회가 이러한 행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가 약 1800년대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약 150여 년 정도 전부터 나 가능한 행위였다고 할 수 있죠. 어찌 보면 150여 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화를 그리는 법에 대해 최초로 기록된 기록물의 제작연도가 1125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캔버스는 이렇게 요상한 모양으로 뒤틀어지기까지 무려 약 9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할 수 있는데요. 명확한 정보 출처가 존재하는 유화 그리는 법에 대해 기록된 책등을 제외한 불명확한 정보까지 합친다면 캔버스가 이용된 시기는 족히 1500년 전까지 거슬러내려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캔버스는 네모의 모양에서 이처럼 요상한 모양으로 변하기까지 약 1400여 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죠.


여기서 들 수 있는 의문은 ‘길게는 1500년까지 뒤틀리지 않았던 캔버스는 왜 150년 전쯤 뒤틀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역사를 훑으려고 한다면 카메라의 탄생이니 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에 대한 부분들이 나올 것 같은데요. 왜 변화했는지에 대한 부분들은 지난 글들에서 여러 번 정리했으니 오늘은 전통적이었던 과거와 전통적이지 않은 현대의 차이에 대해서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모 반득 한 캔버스를 추구했던 과거 사회는 네모 반득 한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그림의 형식마저 추구했던 형식이 존재했는데요. 이와 같은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재미난 예가 바로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그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 그림과 동일한 구도를 이용하고 있는 ‘올랭피아’라는 그림과 함께 살펴보면 현대와 고전의 재미난 충돌을 아주 흥미롭게 느껴볼 수 있죠.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첫 번째의 그림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에 의해 1537 ~ 1538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 그림은 베니스의 일반 귀족 여성을 그려낸 작품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의 누드화가 그려지는 전형적인 방식을 추구하며 당시의 시대가 생각했던 여성의 이상적인 미를 표현해낸 그림입니다. 이 그림과 대조되는 위치에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서 약 300여 년 이후에 그려진 올랭피아라는 그림을 언급한 것은 이 올랭피아라는 그림이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이용된 구도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이런 누드화는 어쩌면 흔한 누드화의 구도로 이 외에도 비슷한 그림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똑같은 구도를 가진 두 그림이 가지고 있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이야기는 이 둘을 흔하지만은 않은 그림으로 만들어 줍니다.


사실 올랭피아는 인상주의 그림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으로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라고도 평가되는 그림인데요. 직업여성의 누드화를 그리고는 당시 프랑스의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유명했던 전시회 살롱전에 내놓는 것으로 겉으로는 여성의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은밀하게 직업여성들을 첩으로 숨겨두고 있었던 프랑스 귀족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실제로 올랭피아의 그림 속의 여성이 차고 있는 팔찌와 목걸이는 당시 직업여성들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고 하는데요. 직업여성이라는 신분과는 맞지 않게 데리고 있는 흑인 노예와 흑인 노예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귀족 남성의 은밀한 첩으로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거기다 그림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그려진 하얀색 강아지와는 대조적으로 그려진 검은 고양이는 당시의 시대상으로서는 굉장히 도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하는데요. 평화롭게 웅크리고 있는 하얀 강아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털을 곤두세우고 화내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그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죠.


올랭피아를 그려낸 에두아르 마네의 이와 같은 도발적인 선택들은 당시 귀족들에게 인상적인 인상을 남기며 인상주의 화풍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인상을 남겼는데요. 당시 살롱전에서 귀족들의 천하다는 평가와 멸시를 받으며 전시 자리가 갑작스럽게 구석으로 옮겨지는 조치가 취해졌었다고 전해집니다. 똑같은 여성의 누드화를 그렸음에도 직업여성과 흑인 노예, 검은 고양이 등 당시의 시대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성의 미를 표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과 같은 것이었죠. 귀족들의 어두운 치부를 폭로하고 있는 이 그림이 당시 사회의 멸시와 천시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이 올랭피아라는 그림이 출품된 살롱전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열려있었다는 점과 하루 벌어 하루 살던 하위 계급층의 사람들도 이 살롱전만큼은 꼭 다녀갔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이런 천시와 멸시가 꼭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고자 했던 귀족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가 원했던 이상적인 여성의 미를 표현하지 않는 그림은 어쩌면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 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죠.



이처럼 과거 정해진 형식에 맞추지 않고 그에 반하는 그림을 그려낸 마네의 올랭피아는 당시 사회의 천하다는 평가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올랭피아라는 그림은 현재 올랭피아를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프랑스, 파리)의 대표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죠. 과거의 시대가 원했던 여성의 이상적인 미를 표현했던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그림도 우피치 미술관(이탈리아, 피렌체)에 잘 보관되고 있지만 지금 시대의 평가로서는 올랭피아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같은 구도를 사용했음에도 과거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며 멸시와 천시를 받았던 올랭피아가 이 시대에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라고도 평가되며 과거와는 또 다른 극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과거의 미술은 정해진 틀과 함께 만들어진 캔버스에 정해진 틀과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늘 정해진 틀을 무시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고 있죠. 이와 같은 틀 없는 자유로움은 모든 작가들이 각자의 틀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만들어내며 과거와는 다른 복잡한 모습의 미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이와 같은 복잡함으로 인해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은 현대의 미술이 가지는 큰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말은 마치 정리되어있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롭게 개인의 것을 만들 수 있는 이 시대가 가지는 새로운 자유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모양이 있는 이상한 모양의 캔버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늘 모양이 네모였던 혹은 네모 여야만 했던 과거의 캔버스가 이상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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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