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이고 야한 작품.
- 에세이/현대미술
- 2017. 10. 12. 22:36
선정적이면서 야한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은 '선호하지 않는다.' 정도의 표현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극도로 선정적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을 피하려는 경향을 가질 만큼 선정적인 이미지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 선정적이고 야한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작가가 있었는데요. 바로 '앨런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작가의 전시회를 보고 나서였죠. 2014년 경이었던 것 같은데요. 영국의 왕립 아카데미(RA)에서 앨런 존스의 전시회가 열렸던 해였습니다.
전시회는 당연히 아주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요. 사실 처음 이 전시회를 방문할 계획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유학 시절 기차를 타기 전에 나눠주는 무료 잡지 타임아웃(Timeout)에서 우연히 보게된 앨런 존스의 인터뷰를 보고는 그의 전시회를 한 번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성'이라는 것에 대한 장점은 우리 모두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앨런 존스 "
( The great thing about sex is that everybody has an opinion about it. - Allen Jones )
개인적으로 인터뷰 속에서 가장 끌림을 느꼈던 문장은 바로 위 문장이었는데요.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들은 그저 시각적인 충격을 이용해 관심을 받고 싶어 하지 않나 하는 편견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저에게 야하고 선정적인 작품에도 나름의 깊은 생각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만들었던 문장이었습니다. 그저 편견에 쌓여있었던 제 생각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였죠. 그렇게 우연히 인터뷰를 읽는 것을 계기로 대부분의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제가 입장료가 2만 원에 달하면서도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들이 가득한 전시장에 방문하게 됩니다.
앨런 존스(Allen Jones)의 작품 '테이블(Table)'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듯 전시회는 제가 가지고 있던 선정적인 작품들에 대한 편견을 확실하게 부숴버렸는데요. 전시회는 80세에 나이의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50년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게 시기별로 작품들을 정리해놓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리된 50년의 흐름을 보면서 '야한 작품을 이렇게 50년 동안이나 꾸준히 변화시킬 수 있구나...'라는 지금 쓰고 있자니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 감탄을 하고 있었죠.
페인팅부터 시작된 그의 초기 그림들은 인상주의, 입체파 등 다양한 화풍 형태로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이후 팝아트가 핫했던 그의 왕성한 활동 시기와 맞게 팝아트적인 요소가 성적인 요소를 섞어버린 듯한 다양한 조형물들이 전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여성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테이블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죠.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50년의 시간 동안 작품의 변화는 화풍 등 시대적인 미술 형태의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오로지 성에 대해 표현하려고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가볍게 말해보자면 50년간 미술을 변화시키며 오로지 야한 것만을 만들 방법을 찾아해멘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들은 모두 야한 작품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특성을 만들기 위해 50년간 노력하고 변화해왔다는 사실은 조금 독특한 형식의 장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야하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기피하고 조금은 무시하기도 했던 작품들에도 그 나름의 깊은 생각과 노력들이 담겨 있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죠. 어쩌면 이와 같은 노력과 깊은 생각의 흔적이 표현된 듯한 그의 인터뷰가 제가 가지고 있던 야한 작품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그의 취향을 존중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취향의 차이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앨런 존스(Allen Jones)의 작품 '아! 3 ( Ah 3 )'
또 한편으로는 '만약 이런 전시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듯 한국은 선정적인 것들을 조금은 배척하는 성향이 강한 보수적인 사회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쩌면 저 조차도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이기에 이와 같은 작품들에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왠지 모르게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야함을 마음껏 사진으로 보여드리기가 민망한 감정이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은데요.
괜스레 그의 작품들에는 '이유 있는 야함'이라는 설명을 붙여놓고 싶은 것 같습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깊은 생각을 담고 있지 않은 많은 일반적인 작품들 사이에서 야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작품에 꼭 깊은 뜻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겠죠. 혹은 한국에서 자라난 야한 것은 좋아하지만 야한 것을 들어내놓는 것에 대해 약간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저를 전시회로 끌어오며 문화적인 감성마저 바꿔놓을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은 그저 선정적인 것 외에 어떠한 매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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