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가격이라는 돈의 단위

'제프 쿤스(Jeff Koons)'의 '풍선개(Balloon Dog)'


이 피에로가 만들어주는 풍선 강아지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대형 조형물은 ‘풍선개’라는 제목을 가진 제프 쿤스의 작품입니다. 대형 조형물을 스테인리스 재질을 이용해 마치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인데요. 이 풍선개 시리즈의 작품 중 주황색의 작품은 무려 600억(5800만 달러)이라는 가격과 함께 경매에 낙찰되며 한때 생존 작가로서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600억이라니, 그 말만 들어도 이게 그와 같은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도 전에 이미 그저 말문이 막혀버리는 가격이죠.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 같은 조형물이 600억이라니 ‘미술은 참… 역시 사기다…’라는 문구가 딱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사실 ‘돈’은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절대적인 수단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편리한 교환을 위해 탄생한 수단입니다. 그리고 가격이란 그저 이와 같은 돈이라는 수단의 단위에 불과하죠. 물론 금은 돌보다 높은 가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높은 단위의 가격을 가진 물건은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금은 돌보다 희귀한 것이고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그 값어치가 높은 것은 사실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쩌면 이와 같은 시각은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에 가격이라는 값어치가 매겨져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진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금은 돌보다 희귀한 것이니 그 경제적인 가치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누군가의 취향은 그저 번쩍이는 금보다는 반짝이는 조약돌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반짝이는 조약돌을 더 예쁘게 느끼는 이에게 똑같은 크기의 번쩍이는 금과 반짝이는 조약돌 중 가지고 싶은 것을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취향은 반짝이는 조약돌을 좋아하고 있음에도 결국 번쩍이는 금을 가지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보고 싶은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은 아주 오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 차이가 아주 작고 오묘해서 가끔은 그 둘을 비슷한 것으로 바라보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분명 금덩어리보다 조약돌을 예쁘게 보고 있음에도 금덩어리의 가격으로 인해 금덩어리를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은 어쩌면 믿기지 않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을 가진 풍선개와 같은 작품에서 느끼는 우리의 괴리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작은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의 가격은 작품을 인상적으로 만들고 신비한 것으로 만든다. / 존 버거

(It has become impressive, mysterious, because of its market value. / John. B)


존 버거(John Berger)라는 미학자는 ‘보는 방법들(Ways of seeing)’이라는 책에서 위와 같은 말을 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이 앞서 언급된 우리의 괴리감에 대해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문장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인상적이고 신비롭게 만드는 시장의 가격이라는 것은 마치 취향은 조약돌을 예쁘게 보고 있음에도 시장의 가격으로 인해 금덩어리를 더욱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말을 했던 존 버거는 시장의 가격 외에도 오랜 시간과 함께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역사성과 같은 부분들도 작품을 신비롭게 혹은 인상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결국 우리는 작품을 바라볼 때 개인의 취향 외에도 그 외적인 요소들로 인해 작품을 인상적으로 느끼고 신비롭게 느끼며 마치 작품을 좋아해야만 하는 작품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 괴리감을 형성한다는 것이죠. 작품의 돈과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역사성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니 조금은 혼란스러운 느낌이 있는데요. 역사성과 같은 부분들은 돈과 가격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글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부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관객의 개인적인 취향 외에도 사회적인 시선이나 평가 등이 충분히 관객 개인이 가지는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개인적인 취향과 함께 그 가치가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시선이나 평가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작품은 그저 개인의 취향과 함께 아무 지식 없이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술사와 미학 등을 공부하며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작품들과 함께 더 많은 재미들을 느낄 수 있겠지만 시작이라는 것은 언제나 모르고 보면서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회적인 평가라 할 수 있는 가격이라는 존재는 있는 듯 없는 듯한 희미한 존재감과는 다르게 굉장히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내 취향은 이 작품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백억이라는 가격을 듣고 나면 섣불리 그 작품에 대한 혹평을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죠. 수백억이라는 가격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되면서 마치 작품이 수백억이라는 가격의 숫자 크기와 동일한 미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높은 미술적인 가치를 가진 작품은 대게 높은 가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이라는 높은 확률에 불과할 뿐 높은 미술적인 가치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늘 높은 가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재미난 사실이 존재하죠.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의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


이 작품은 ‘나선형 방파제’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대지미술가 ‘로버트 스미슨’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만든 로버스 스미슨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대지미술가이기도 한데요. 1970년, 덤프트럭과 트랙터를 이용해 무려 6천 톤이 넘는 흙과 돌을 강에 실어 나르는 거대한 노동으로 나선형 형태의 방파제를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1970년 4월, 미국 유타주의 위치한 그레이트솔트 호수에 만들어지고는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는 작품이죠. 그리고 또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대지미술가 로버트 스미슨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작품은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그의 덜 유명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단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선형을 만들고 있는 선의 굵기가 4.6미터에 이르면서 그 총 길이가 460미터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작품을 누가 구매하겠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처럼 생긴 거대한 조형물을 600억에 구매하는 미술 세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런 거대한 크기와 작품의 형태 등이 그들이 작품을 구매하는 행위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조사해본 바로는 작품 제작 당시 제작비 9천 달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던 ‘미술재단 DIA(DIA Art Foundation of New York City)’가 이 작품을 제작 당시부터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전해지는데요. 관리 비용은 작품이 설치되어있는 호수가 위치한 미국 유타주 지방정부에 매년 지불하는 토지 이용료 100달러가 전부라고 전해집니다. 현재 환율(1133원, 2016/10)을 고려하자면 일 년에 11만원 정도의 관리비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인 것이죠. 수백억이라는 가격과 함께 거래되고 있는 풍선개 등의 작품들과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로버스 스미슨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11만 원이라는 관리비 또한 이 작품을 구매하는 것에 큰 문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보고 있자면 대지를 이용한 미술의 형태인 대지미술을 대표하는 한 유명 작가의 대표작이 왜 팔리지 않는 것인지 혹은 미술 컬렉터들의 관심을 왜 받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만 가죠.


사실 이 작품이 거래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일정한 가격을 주고 구매한 이후 시간이 지나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투자성이 없기 때문이죠. 만약 가격이라는 것이 우리가 조약돌을 가지고 싶어 하는 그와 같은 마음과 함께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부유한 누군가에게 구매되어 소유자의 이름을 바꾸고 관리받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자본의 단위는 반짝이는 조약돌보다는 번쩍이는 금덩어리를 가지고 싶게 만드는 그 마음처럼 늘 취향과 함께 물건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구매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게의 작품은 투자의 형식을 취하며 거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물론 이와 같은 투자적인 마인드와 함께 작품을 구매하고 거래하는 것을 좋지 않은 행위로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이와 같은 돈과 미술의 관계를 보여드리며 가격이라는 것은 관객이 개인적으로 미술을 바라볼 때 그 영향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사실 금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생각도 없는 이들에게 금의 가격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존재입니다. 어쩌다 금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을 팔기 위해 가격을 봐야 하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조약돌을 보고 있으면서 옆에 있는 금의 가격을 굳이 살펴보고 조약돌의 가격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작품은 우리에게 취향에 맞지 않는 금이 되기도 하고 취향에 맞는 조약돌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옆에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보다 굉장히 적은 가격과 미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미술을 보는 사람들이지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높은 가격과 함께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한 부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잠시 사회에서의 일상을 잊고 보는 즐거움을 즐겨보려 찾아온 작품 앞에서만큼은 잠시 가격이라는 것은 그저 편리한 교환을 위한 돈이라는 수단의 수치에 불과하다고 무시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반응형

댓글(0)

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