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이란 무엇인가? Part 2 / 2 [ 새라 미술 이유식 ]


'순수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두 번째로 이야기를 나눠본 파트 2 는 파트 1을 녹음한지 3일 만에 다시 모여 녹음을 진행했는데요. 지난 녹음 당시 밥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배가 불러 녹음이 늦어지는 실수 등을 무마하기 위해 식사를 정말 간단히 해결하고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근황도 최대한 생략하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 '마리 앤 스테니쯔와스키'의 '예술은 고정화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문장부터 시작했는데요.


'예술은 고정화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이 문장의 의미는 어쩌면 현대라는 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을 굉장히 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미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현대는 약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몇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이루어지던 과거의 미술에 비하자면 상당히 짧은 역사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미술은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다양한 변화와 함께 혼란스럽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현대미술은 어쩌면 '예술은 고정화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는 문장과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요. 혼란스럽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어 '이게 과연 옳은 모습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변화가 가능한 현대라는 사회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복제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사진, 인쇄 기술의 발전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사진기도 존재하지 않고 사진기가 없으니 사진기가 찍은 사진도 존재하지 않던 과거 시대는 작품을 오직 진품을 보는 것으로 즐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현대 시대의 우리는 컴퓨터 모니터 위에 작품의 사진을 뛰어놓고 간접적으로나마 '작품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인데요. 이처럼 현대사회는 작품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면서 작품을 보는 관객이 늘어났습니다. 수요가 늘어나는 이와 같은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한데요. 수요가 늘어나며 공급이 함께 늘어나는 현상도 현대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죠.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늘어나는 관객과 늘어나는 작가들은 다양성을 가진 현대사회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또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새로운 미술의 모습과 과거 전통미술이 가진 모습의 차이가 현대의 관객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순수미술을 뜻하는 'Fine Art'라는 영단어는 1767년 옥스포드 사전에 처음으로 기재가 되었을 정도로 최근에야 생겨난 단어라는 점은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1700년대 이전의 미술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순수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와 '전통미술은 무엇인가?'로 나눠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과거에 이루어지던 미술과 현대에서 이루어지는 미술, 이 확연히 다른 두 미술의 모습은 '미술'이라는 큰 틀로 이 둘을 바라보는 일반 관객들에게 크나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많은 미학자들은 또 '미술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아버리니 이미 혼란을 느끼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하는 말일수도 있죠.


하지만 위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며 미술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은 다양함이라는 새로운 특징을 가진 현대의 미술이 혼란스러운 녀석이면서도 정의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이해해본다면 폭풍처럼 몰려오던 혼란스러움 들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혼란스러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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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