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 오크나무의 개념을 가진 한 잔의 물

오늘 이야기해볼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오크나무’는 개인적으로 개념미술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작품인데요. 실제로 데미안 허스트 등 많은 미술인들에게 개념미술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는 조금 어처구니 없어보일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개념이 작품에 담기는 과정을 상당히 날카롭게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개념미술이라는 복잡한 요소를 유쾌하고 날카롭게 설명하면서 이해시켜보려고 하는 의도가 지금은 은퇴하였지만 2000년대 세계 미술 시장을 흔들었던 ‘YBA(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대학교수라는 그의 오랜 직업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 Martin)의 작품 '오크나무(Oak tree)'


개념미술의 교과서라는 비공식적 타이틀을 가진 이 작품의 겉모습은 상당히 단순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담은 작은 물 컵이 유리 선반 위에 올려져 있고 작가와 인터뷰어의 대화를 대본처럼 적어놓은 용지가 함께 전시되어있는 모습인데요. 사실 이 작품의 독특한 과정은 바로 이 용지에 적힌 대화 속에 있습니다. 작가는 대화를 통해 선반 위의 물 컵이 어째서 물 컵이 아닌 오크나무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을 읽고 있자면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지만 읽으며 생각하다 보면 문득 그 어처구니 없는 과정이 개념미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입해볼 수 있는 하나의 공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속의 ‘A’는 작가로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굉장히 긴 인터뷰이지만 이 둘은 그저 이 한 잔의 물로 보이는 물체가 왜 오크나무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각 없이 읽고 있자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철학 용어들과 아는 단어임에도 알아먹을 수 없는 쓰임을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 ‘미술 하는 망할 놈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대화인데요. 대화를 조금 풀어보면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졌던 개념미술의 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주장은 간단하게 자신이 컵에 물 한 잔을 따르며 이 한 잔의 물을 물질 혹은 성질의 변화 없이 오크나무로서 개념의 변화를 의도했기에 이 한 잔의 물이 오크나무가 되었다는 것인데요. 사실 개념이라는 단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개념'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봐야 하는 ‘미술’과 나란히 배치하여 개념미술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함이 많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것으로 작품의 외면적인 모습보다는 작품에 담긴 의미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자면 개념과 미술이라는 단어가 또 어울리기도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컵에 물을 담으며 물이 담긴 컵을 완성하는 것으로 한 잔의 물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그저 한 잔의 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크나무 혹은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모습이 현대의 개념미술이 가진 모습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죠.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 '살아있는 자들의 마음 속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다른 작가의 작품과 함께 이를 설명해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위 작품은 2000년대 살아있는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 불리기도 했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인데요. 데미안 허스트는 호주의 상어 잡이에게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큰 상어’를 잡아달라는 요청과 함께 위 상어를 구매하여 그가 평소 다루는 주제인 ‘죽음’이라는 개념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컵에 물을 따르며 이를 오크나무로 변화시키는 모습은 죽은 상어를 박제하여 방부제에 담가놓는 것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려는 모습과 상당히 유사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물질적으로는 박제된 죽은 상어에 불과하지만 작품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상어를 만난 관객은 ‘잡아먹히면 어떻게 될까?’하는 등의 생각과 함께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인데요. 한 잔의 물을 보고는 오크나무를 떠올릴 수는 없지만 ‘인터뷰 대화 시트’라는 영리한 선택을 통해 관객들에게 물 한 잔을 보고 오크나무 혹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은근히 어울리는 듯한 큰 상어와 죽음이라는 두 객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물 한 잔과 오크나무라는 두 객체를 선택하는 것으로 현대의 미술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영리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 과정이 참 모호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처럼 그저 일상적이기만 할 수도 있었던 물건들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특별하게 만들고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는 복잡한 과정을 가진 믿을 수 없는 혹은 도통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사회적인 약속마저 작품 앞에 서 있는 그 잠깐의 순간이나마 깨트려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현대라는 사회 속의 미술이라는 것이 가지는 재미와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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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