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미술을 가르치다.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작품 '나는 더 이상 지루한 미술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미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미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모이면 꼭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자주 등장하지만 늘 그 의견이 갈리기 일 수여서 가끔은 대화를 하다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특히 '입시미술'이라는 국내 미술 교육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미술 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한 토론에서 무조건적으로 등장하는 세부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관적인 과정과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거의 모든 학과의 미대 진학을 결정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입시제도 인가라는 의문마저 등장하며 아예 없어져야 한다는 극적인 의견에 힘이 실리기도 하는데요. 그에 반해 그림은 미술의 기본적인 소양으로서 중요한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입시미술의 유지를 주장하는 의견도 탄탄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죠.

 

사실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영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한국의 입시미술을 겪어본 적은 없습니다. 또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국으로의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한국 입시미술을 준비해보는 간접적인 경험조차 해보지 못 했는데요. 이로 인해 제가 겪었던 영국의 입시미술 형태를 먼저 말씀드려보자면 사실 영국에는 학교별로 다양한 형태의 시험이 존재합니다. 급진적인 형태의 미술를 보여주며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학교에서는 '포트폴리오' 위주의 심사를 진행하고 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지향하며 전통적인 형태의 미술을 보여주는 학교에서는 데생과 소묘를 기본기로 치르는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 중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으로 시험을 보는 현대미술의 성향을 보이는 학교에서 입시를 치른 후 입학했죠.

 

사실 입시미술은 전통적인 형태의 미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현대미술 성향의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형태의 입시를 치렀다고 해서 입시미술의 반대파에 서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입시미술에서만 나오는 입시미술적인 그림 속에서 오히려 한국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또 오직 국내의 입시미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입시미술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죠. 미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개개인이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모든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며 다양한 입시미술의 형태가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입시 미술이라는 것은 학생이 진학을 위해 대학의 요구 조건에 맞춰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큰 관점에서의 입시미술이란 학교가 원하는 학생을 찾는 하나의 방법인데요. 어쩌면 입시미술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입시미술을 채택하여 학교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생을 골라간 학교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입시 미술에 자신의 몸을 끼워 맞춰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특정 대학이 직접 채택했던 입시미술과 전혀 연관이 없는 미술을 학과 과정으로 교육하고 있는 상황은 배드민턴을 입시로 걸어놓고는 테니스를 가르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비록 입시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입시미술에 자신의 스타일을 끼워 맞추는 것이 잘못이라고 한들 대학은 자신이 채택한 입시미술로서 우수함이 판단된 학생들을 분별하여 선별하고 그와 관련된 교육이 진행되어야만이 최소한 끼워 맞춘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이 끼워 맞춘 능력을 키울 수라도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겠죠.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도 최소한 본인이 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시미술이 요구했던 것과는 다른 능력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결국 학생은 학생대로 끼워 맞춘 능력으로 대학에 들어와 입시에서 요구했던 것과는 다른 교육에 지쳐가는 것이고 대학은 대학대로 교육 과정과 맞지 않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힘을 빼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결국 끼워 맞추는 능력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쩌면 앞 세대가 믿는 '가장 이상적인 미술'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결과는 앞 세대가 믿는 아름다움의 연장이 아닌 앞 세대가 믿는 아름다움의 발전에 있어야 하는 것이죠. 오래된 것은 아무리 잘 관리되어도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무뎌진 오래된 것을 대체하기 위해 같은 방식의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가르치는 것보다는 앞 세대의 것을 본보기로 삼아 현재의 원동력으로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시대에 맞춰 변화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발전을 향한 교육의 과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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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