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선택,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대학교의 졸업 전시회는 공식적으로 가장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졸업 전시회를 돌다 보면 영상 작품 등을 전시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아주 오래된 TV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작가들이 주를 이루는 졸업전시회에서 이제는 일상에게 보기 힘든 15살 이상은 먹어 보이는 오래된 볼록렌즈 TV라니 참 오묘한 조합이죠. 이런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에서 사용된 오래된 TV들을 보고 있자면 이 작가는 왜 화질도 낮은 오래된 TV를 영상 작품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는 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상을 화질이 낮은 TV를 이용해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영상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젊은 작가들이 이런 오래된 TV를 사용하는 것에 조금은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작품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작가 개인의 자유라 생각하는 개인적인 믿음과는 충돌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런 개인적인 두 생각의 충돌은 이 부분을 더욱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던 요소이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는 오래된 TV를 사용하는 것이 본인의 작품을 작품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이기에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오래된 TV를 작품으로서 사용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 작품을 작품처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중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미술품을 만드는 안전한 선택은 큰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없는 지루한 선택일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죠.


백남준 선생님의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Electronic Superhighway :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오래된 볼록렌즈 TV는 이제 ‘오래됐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옛날 물건이 되었지만 사실 이런 오래된 TV들은 한때 새로운 것이자 최신형으로서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저화질의 영상기기로 보이는 이런 오래된 TV들은 한때 흑백 TV들 사이에서 색이 입혀진 생생한 영상을 전해주던 최신형 컬러 TV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이 시절은 오묘하게도 백남준 선생님과 같은 1세대 비디오 아트 미술가들이 각종 TV 등을 이용하여 작품을 내놓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은 오래된 TV들이 사용된 작품들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공개된 당시는 최신형 TV를 이용한 아주 세련된 작품이었던 것이죠. 사실 TV라는 기계조차도 생소했던 시절 TV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작품들은 그야말로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드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 세대의 미술가들의 끊임없는 시도는 ‘이게 뭔가…’ 싶었던 TV를 이용한 작품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미술처럼 보이게 만드는 엄청난 결과를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앞 세대에게는 비싼 최신형 TV를 이용한 돈 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비디오 아트 작품들이 그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오래된 TV들이 사용된 미술로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앞 세대의 도전을 통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전통과 관습은 안전하고 편안합니다. 전통과 관습은 늘 앞 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이 존재하고 앞 세대도 했었다는 역사적인 배경도 존재하니 기본적으로 중간은 갈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간편한 선택이죠. 그리고 가끔 이런 전통이 길어지면 그 전통 외의 것들은 무시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데요. 무시의 이유는 대게 전통에서 벗어난다는 이유입니다. 완벽하게 지켜져야만 할 것 같은 오래된 전통도 결국 그 발단의 시기에는 새로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인데요. 물론 앞 세대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서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된 몇몇 전통은 대게 오랜 시간 동안 지켜져 온 이유가 있습니다. 앞 세대가 이뤄놓은 것들에 대한 존중과 공부가 더 나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해준다는 사실 또한 역사가 보증하고 있는 또 다른 사실이죠. 하지만 어쩌면 앞 세대가 이뤄놓은 것들을 존중하며 모방하고 공부하기만 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결과 없는 존중과 공부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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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