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모르는 예술가 본인의 작품
- 에세이/미술과 미술가
- 2017. 1. 28. 16:36
갤러리 혹은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며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은 어쩌면 '이건 뭐지...?'와 같은 이해 못할 혹은 모르는 것에 대한 의문의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예술에 종사하고 있는 예술인들조차도 미리 조사를 하고 가지 않고서는 방문한 박물관 혹은 갤러리의 모든 작품들을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은 알 수 없는 작품 앞에서의 당황은 일반인과 예술인 모두에게 포함되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조금 더 황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실은 가끔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는 작품을 만든 작품의 작가 본인조차도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 알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도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알지 못한다니 어찌 보면 참 황당한 상황이지만 작가도 모르고 관객도 모른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의 우리를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실이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작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 당황하고 있는 작품이 작품을 만든 작가 본인조차도 모르는 모두 함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라면 결국은 관객과 예술가 모두 작품 앞에서 지식의 차이가 없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과 같으니 말이죠.
리차드 터틀(Richard Tuttle)의 '나도 모르겠다. 혹은 텍스타일 언어의 짜임(I don't know. The weave of textile Language.)'
개인적으로 이처럼 작가 본인조차도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던 경우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로 작가 '리차드 터틀'의 작품 '나도 모르겠다. 혹은 텍스타일 언어의 짜임(I don't know. The weave of Textile Language.)'이라는 작품인데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서 '나도 모르겠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아주 재미난 작품입니다. 그저 겉모습만으로도 높이가 약 40피트(약 12미터)에 이르며 사실 작품으로서 만들어졌다는 표현보다는 지어졌다는 표현이 어울리기도 하는 그 거대함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기도 하죠.
'나는 이 작품의 제작이 끝날때까지 이 작품이 어떻게 생겼을지 알 수 없었다.'
(I literally did not know what it was going to look like untill the end)
위의 문장은 리차드 터틀이 위 작품에 대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답변했던 말의 일부인데요. 관객들에게는 조금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어찌 보면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드는 발언입니다. 그는 또 이 작품을 만들 때 정확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미지만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그저 이 작품이 전시될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작품을 감각에 의존하며 만들었다고도 말했는데요. 이와 같은 작품에 대한 그의 솔직한 발언이 참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잠시 제 개인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한때 감각에 의존하며 오직 시각적인 이미지만을 만들어내는 경향의 미술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미술' 혹은 작품 뒤에 숨겨져있는 스토리 등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으로 인한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이 작가 '리차드 터틀'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면 '감각에 의존하여 작가 본인도 작품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작가의 솔직한 발언은 어쩌면 오직 감각에 의존하는 정체불명의 작품을 설명하는 하나의 색다른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직 스킬, 감각 혹은 감정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작품에 대해서 그 겉모습 외에는 큰 매력이 없다는 개인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도 굉장히 색다른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으니 말이죠.
갤러리 혹은 박물관에서 내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만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에 반해 갤러리에서 내가 모르는 작품인데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라 설명되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마치 해외의 얼굴 모를 유명 연예인을 만난듯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죠. 유명하다 하니 신기하지만 아는 것이 없으니 '유명하데..'라는 생각과 같은 감정 이상은 느끼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그 해외의 유명 연예인이 나왔던 영화나 드라마 등의 부가적인 설명을 통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면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 얼굴 모를 유명 연예인이 더 이상 흥미로운 요소로 존재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을 흥미로움이라는 요소가 좋은 미술의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쩌면 한 번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이나 유명 연예인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또 관객에게 미술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즐기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이처럼 작가도 모르고 관객도 모르는 작품의 앞에서 작품을 만든 작가조차도 작품에 대해 모른다는 작가의 솔직한 발언은 큰 흥미로운 부가적 설명이면서 관객과 작가가 함께 모르는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서로 조금 더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또 어쩌면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미술 작품에는 늘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관객들은 또 다른 당황스러운 작품 앞에서도 조금은 더 여유로움을 가진 체 그 작품 앞에서 차분함을 가지고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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