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일러스트레이터, 화가, 산업 디자이너 등 세상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설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고객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오직 그림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연중에 오직 그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그림이 가장 순수하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오직 그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은 화가의 그림을 아주 순수한 무엇인가로 보이게 만드는 배경이자 표현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그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라고 크게 묶어버린 이 영역을 다시 두 영역으로 나눠보자면 ‘순수미술가’와 ‘산업미술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눠진 두 영역의 대표적인 직업은 역시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을까요. 이렇게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는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중 겉으로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는 직업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신문과 잡지 등의 대중 매체를 위한 일러스트 등이 필요해지면서 20세기를 기점으로 생성된 새로운 직업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화가와 비교하자면 100년, 200년이 채 되지 않은 굉장히 짧은 역사를 가진 새로운 직업입니다. 사실 산업미술가라는 영역 자체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생겨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만들어졌다 보니 기나긴 역사를 가진 순수미술가에 비해서는 굉장히 짧은 역사를 가진 직업군이죠. 그리고 이런 짧은 역사를 가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의 시작점에는 순수미술가 중에서도 화가라는 직업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갑자니 나타난 잡지와 신문이라는 대중매체는 몇 해 전 갑작스럽게 나타난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것이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파고 들어온 존재였는데요. 이런 대중을 위한 소식과 정보들을 글로 담고 있던 잡지와 신문은 조금 더 자연스러운 정보 전달을 위해 그림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의 인쇄 기술로 표현이 가능한 간단한 일러스트들을 그리는 일들은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의 일이 되었죠. 이렇게 시작된 산업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자연스럽게도 화가라는 직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까지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화가라는 순수미술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산업미술가들은 더더욱 순수미술가보다 낮은 선상에 있는 예술가들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사회적인 시선을 살펴보면 순수미술가의 그림 작품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일러스트보다 더 높은 가치의 그림으로서 인정받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요. 여기서 다시 한 번 순수미술가와 산업미술가들을 ‘그림 그리는 사람들’로서 묶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나옵니다. ‘화가(순수미술가)의 그림은 정말 사회적인 시선처럼 일러스트레이터(산업미술가)의 그림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혹은 ‘순수미술가와 산업미술가를 나누는 기준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죠.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첫 번째 질문에 만약 ‘화가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라는 답을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더욱 흥미로운 질문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사실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를 나누는 기준은 굉장히 모호합니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화가처럼 보이고 컴퓨터에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보이죠. 그런데 사실 화가도 컴퓨터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일러스트레이터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작업을 하는 외적인 모습보다는 그들이 그려놓은 그림의 쓰임새가 그들을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나누는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도 화가로서 활동할 수 있고 화가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화가의 그림이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보다 더 가치 있다 느끼고 있는 사회적인 시선이 그저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 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결국 그 둘은 그저 각자의 목표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 불과할지도 모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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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