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신다 (드레)
- 방송/새라 미술 이유식
- 2018. 4. 26. 12:07
* 아래는 라디오의 내용을 문어체로 한 번 더 편집한 글 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라 미술 이유식을 진행하고 있는 개념미술가 도니, 이동준입니다. 슬슬 혼자 진행하는 새라 미술 이유식의 세 번째 회차가 되니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한데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죠...? 물론 아직 어색하기는 합니다만... '이제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라고 세뇌를 하며 오늘도 한 번 '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신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우수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계층과 가장 가난한 소비계층이 같은 품질의 물건을 소비하는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부유한 계층 & 가난한 계층)는 TV에서 코카콜라를 보는 것이 가능하고, 또 우리는 대통령이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고의 여배우[리즈 테일러(1950, 60년대 최고의 미국 여배우)]도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도 같은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 ( 앤디 워홀, 1975 )
이 문장은 앤디 워홀이 자신이 직접 집필한 책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언급한 문장입니다. 그저 우리가 모두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이 문장은 그저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팝아트에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문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아직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생각이지만,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를 담고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코카콜라를 마신다.'라는 사실에는 같은 품질의 제품을 일정하게 생산해낼 수 있는 현대의 새로운 환경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품질의 제품을 일정하게 생산해내는 이 새로운 환경은 오직 식품 적인 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기성 제품을 포함하며 미술의 전시 영역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죠. 사진과 영상이라는 현대의 새로운 기술은 미술을 행하는 매체로써 미술에 엄청난 변화를 찾아오게 하기도 했지만,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와 작품 노출 영역에서도 엄청난 영향과 함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간단하게는 '작품을 본다.'라는 사실에 대해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사진과 영상의 등장은 '미술 작품을 본다.'라는 부분의 개념 자체를 바꿔놓은 새로운 환경이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이 변화를 이해해보자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았다.'라고 표현할 때를 생각해보면 되는데요. 우리는 작품을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음에도 사진과 영상을 통해 작품을 보았던 경험과 함께 '나 그 작품 본 적 있어!'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이런 행동을 평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사진과 영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는데요. 화가가 평생을 연구하며 현실을 똑같이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사진과 같은 정밀한 묘사를 완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죠. 이러한 시대에 순식간에 그림보다 정밀묘사가 잘 된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진기라는 기계는 당시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지금 우리에게는 인지조차 못 할 정도로 일반적인 사진이라는 매체가 한때는 기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었던 사실이 존재하는 것이죠.
지금은 그저 핸드폰을 열면 사진들을 볼 수 있고, 심지어 핸드폰에 달린 소형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본인 의지대로 찍는 것도 가능한데요. 한때는 기적이었던 행동이 일상의 주머니 속에 들어와 버린 가장 일반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일상화 된 과거의 기적은 당연하게도 눈으로 보는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영향이 만들어낸 변화 중 가장 거대한 것은 이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관객을 가진 시대로 만들어 준 것인데요. ‘대중’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관객은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계층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상 시대를 이끌었던 왕족, 소수 귀족 등과는 그 크기부터가 다른 거대함을 자랑했죠.
대중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관객으로서 떠오른 것에는 위에서 말한 사진이라는 기적의 보편화를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는데요. 과거 자신이 사는 국가의 왕의 얼굴을 볼 방법은 화가가 그려낸 왕의 초상화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그림은 당연하게도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얼굴이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을 떠나 평범한 그림들을 보기 쉽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이죠.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당시의 대중은 관객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음에도 볼 방법이 없어 관객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현대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떠오른 이유를 약간의 비유와 함께 표현해보자면 바로 코카콜라와 사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중이 코카콜라가 그려진 사진을 보고 구매 욕구가 생겨 코카콜라를 구매해야만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사회가 형성된 것이죠.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늘 시대를 지배하는 계급의 취향과 함께 해왔습니다. 왕권이 강력하던 시절은 왕의 취향과 함께 시대의 아름다움이 결정되었고 귀족에게 큰 권력이 있던 시절에는 귀족들의 취향과 함께 그 시대의 아름다움이 결정되어 온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현대라는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 전체가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실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와 함께 떠오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상도 민주주의와 함께 대중에게 권력을 쥐여주는 재미난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과거와 현대의 변화를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새로움, 신기술 혹은 새로운 물건들이 누구를 위해 도입되는지에 대한 부분인데요. 과거의 새로운 것이란 오직 왕, 귀족과 같은 소수 지배층에만 소유되는 것이었다면 현대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물건들은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대중화를 위해 힘쓴다는 차이점을 가집니다. 물론 고급화 전략을 통해 부자라는 일부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도 있지만, 미술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핑계와 함께 오늘이 이 허점을 잠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과거에는 심지어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고 해도 소수의 지배계층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현대에서는 일부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다 하여도 많은 대중이 그것을 지지하고 인정한다면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대중이 외면한다 하여도 일부 대중의 인정과 함께 최소한의 작은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죠.
사실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는 늘 귀족에게 선택받기를 갈구하는 지배층 아래의 계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관객이 작품과 예술가 위의 존재로서 예술을 바라보았던 것이죠. 하지만 현대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사회의 평등한 주인이라는 사상과 함께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미술가와 미술을 바라보는 관객이 동등한 계층의 입장에서 작품을 내놓고 바라보는 사회가 실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듯 이러한 사실 또한 인지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죠. 하지만 역사 전체를 보았을 때, 이는 정말 짧은 시간에 이뤄진 거대한 변화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나타난 부정적인 부분들도 존재합니다. 소수의 관객이 시대적인 예술의 취향을 주도적으로 결정했던 과거에는 예술의 종류가 상당히 간단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왕족 혹은 귀족과 같은 지배계층에 있는 관객의 입맛이 예술을 만드는 이들에게 너무나 강력함 입김을 발휘했기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의 당연한 결과였죠. 그에 비해 수백 배는 많아진 대중이라는 새로운 지배 계층의 취향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현대의 미술은 자유로움과 함께 다양한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다양함이라는 단어는 자유로움을 뜻하는 긍정적인 단어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많은 종류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는 부정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죠. 거대한 대중의 거대하고 다양한 취향은 많은 작가의 많은 취향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많은 대중이 이를 바라보며 함께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너무 다양한 작품으로 인해 무엇을 먼저 논해야 할지를 판단하기가 힘든 혼란스러움을 초래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거대한 장점에는 거대한 단점도 함께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다만 거대한 장점을 최대한 얻어내며 거대한 단점을 해결할 방안들을 찾으며 시대적인 발전을 거듭해야만 하는 것이겠죠.
또, 사진과 영상 기술의 발달은 작품을 실제 눈앞에서 보지 않고도 '보았다.'라고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짧은 인간의 삶 안에서 상당히 많은 작품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는데요.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갈 필요 없이 집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모나리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비행기 시간 등을 고려하여 약 인간 삶의 30시간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행위로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작품과 관객이 한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이 작품을 관람하게 된 환경에는 또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는데요. 바로 사진과 영상을 통해 많은 작품을 바라본 관객들에게는 작품과 한 공간에 존재하며 실제 모습을 보는 시간이 줄었다는 사실이죠.
물론 이 부분을 그리 큰 단점으로 보지 않는 시선들도 존재합니다. 작품의 겉모습보다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혹은 작품 뒤의 생각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되는 현대미술에서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견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평생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알고 자랐으나 22살 무렵 처음으로 실제 모나리자를 보고는 생각보다 상당히 작은 작품 크기에 약간의 실망을 느꼈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생각해보았을 때 작품을 그저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는 것이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현대미술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이 다양해진 만큼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의견도 다양해지는 것이겠죠.
어쩌면 배경을 완벽하게 담을 수 없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작품을 전달하는 현대의 새로운 전시와 관람의 방식은 전시장을 흰 벽으로 채우게 만든 것일 수도 있는데요.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작품이 등장하는 현대의 전시관으로서는 더더욱 혼란을 가중하지 않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흰 벽을 가진 공간이 꼭 필요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도 천천히 한 번 다른 회차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음... '코카콜라를 마신다'부터 시작하여 너무 많은 부분들\이 등장해버렸나요...? '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신다.'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물건을 소비한다는 느낌이 들며 '세상이 같은 공산품을 소비하는 단순한 세상이 되었다.'라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계층이 같은 품질의 물건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세상이 예전보다는 많이 계층 간의 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이들이 함께 코카콜라를 마시며 많은 것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같은 코카콜라를 마시며 비슷한 모양의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함께 접하며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음... 오늘 준비한 '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신다.'라는 주제로 준비한 회차는 여기까지 이고요. 모든 새라 미술 이유식 회차들은 도니닷컴에서 관련 에세이들과 함께 정리해놓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 추가적인 질문이나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정보란에 적어놓은 이메일을 통해 언제든지 다양한 부분들 문의해주셔도 됩니다.
그럼 또 금방 재미난 미술 이야기들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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