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선택 (드레)


* 아래는 라디오의 내용을 한 번 더 편집한 글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라 미술 이유식을 혼자 열심히 진행해보고 있는 이동준입니다. 혼자서 진행을 한다는 게 많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자유로움이 존재하는 방식인 것 같은데요. 조금 원맨쇼를 하는 듯 하기도 하지만 원맨쇼가 맞죠..? 어쨌든 나름대로 열심히 계속 진행을 이어가 볼 테니, 함께 생각하신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살짝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데요. 에세이로 몇 번 써본 적이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도 참 공부할수록 어려운 부분이 많은 주제여서요. 오늘도 풀어내지 못한 의문과 함께 방송을 끝마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늘 활짝 열린 결말과 함께 무책임한 마무리를 하는 방송이지만, 그런 활짝 열린 결말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조금은 무책임한 발언을 남기며 그럼 오늘의 새라 미술 이유식도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예술가와 다른 직종의 분들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요. 예술가라 하여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간단하게 화가로 예를 들어보자면 화가는 넓은 캔버스 위에 어느 곳부터 붓을 갖다 대며 그림을 시작할지를 선택해야만 하고 또 그림을 그리다 어디서 끝을 냄으로써 그림을 완성할지를 선택해야만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무엇을 그릴지, 색은 무엇을 사용할지 등 그림을 그리는 간단해 보이는 행위마저도 사람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또 현대에 들어서며 예술가들에게는 그 선택의 이유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면서 이 선택의 기로가 가진 장벽이 더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림이라는 매체만을 살펴보아도 현대에 들어오며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그림을 그릴 때 묘사의 형태를 점점 부숴버리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그 선택의 폭이 엄청나게 넓어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사과를 하나 그린다고 했을 때 사과를 그리기 위해 첫 점을 찍고 가장 사과처럼 보이는 시점에서 끝을 내는 과정은 현실과 같은 형태, 색 등을 고려하며 그려내는 복잡한 과정이 존재했지만, 현실과 똑같이 그린다는 하나의 목적과 선택이 존재했었죠. 그에 반해 물감을 마구 흩날리며 그리는 현대의 요상한 그림부터는 과정이 너무 간단하지만, 그 선택의 폭과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과를 어디서부터 그릴지를 고민하는 것에 비교하자면 붓을 어디서부터 흩날릴지를 고민하는 것은 겉보기에 상당히 간단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데요.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을 잠시 배제하고 오직 선택적인 부분만을 생각해보자면 붓에 물감을 흩날릴 만큼 묻혀 놓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흩날리며 어느 순간에 멈출지를 고민할 때의 선택 범위의 수는 보통의 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추상화가 이렇게 어렵다!’ 혹은 '추상화가 일반 묘사화보다 이렇게 어렵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요.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주제에 대해 들어보시기 전에 예술가들이 서 있는 선택의 기로의 모습을 조금 더 이해하신다면 오늘 이야기해볼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번 이야기를 풀어보았었습니다. 


사실 그림이라는 매체가 주를 이루던 과거의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와 함께 시작된 현대미술은 그 매체의 종류가 아주 많이 다양해졌는데요. ‘현실을 똑같이 묘사한다.’라는 그림이 가지고 있던 역할을 가져가 버린 사진이라는 매체는 현대미술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의 선택 범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진은 그림과 다르게 캔버스 위에 첫 붓질을 어디에 할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요. 카메라를 들이밀고, 버튼을 누르고, 찍는, 기계적인 조작 부분을 제외한다면 예술가의 선택과 함께 이루어지는 행동 자체는 아주 간단합니다. 간단한 행위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진의 이런 특성은 행동보다는 행동의 이유를 묻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죠. 


사진과 그림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매체는 모두 평면적인 이미지를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데요. 같은 평면적인 이미지를 만들지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에서 서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 두 매체는 항상 서로의 라이벌이자 비교의 대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간단하게는 두 매체가 만들어내는 평면적인 이미지 속의 구성에서 그 차이를 간단하게 느낄 수 있는데요. 그림은 붓질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것으로 왼쪽에 서 있던 인물을 오른쪽으로 옮길 수 있고 실제 보고 그리고 있는 현실 공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캔버스 위에 그려 넣을 수 있는 것에 반해 사진은 왼쪽에 있는 인물을 오른쪽으로 옮기는 것이 붓질 몇 번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죠. 


사진 속 인물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나타난 포토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역시 왼쪽에 있는 인물에게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있는데요. 이미지 속에 인물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비슷합니다. 그림은 간단하게 또 다른 붓질로 그 인물을 안 그리면 되지만, 사진에서는 사진 속 인물에게 카메라 앵글 밖으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이죠. 만약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찍는 상황이라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에게 사진을 위해 자리를 옮겨달라 부탁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사진은 빠르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상황을 찍는 것 외의 다른 결과물을 얻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런 환경 속에서 사진기를 들고 있는 예술가들은 사진을 찍기로 선택해야 하는 1초의 상황을 늘 기다리고 있게 되는데요. 마음에 드는 순간에 포착하는 오직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진작가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이후 이와 같은 사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진가들은 찍고 싶은 사진을 위한 배경 스튜디오를 만들고 모델을 섭외하여 사진 전체 구성을 원하는 데로 조정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벌어지는 상황을 찍기 위해 늘 기다리고 있던 사진작가가 '직접 상황을 연출하여 찍겠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이 선택은 사진 역사 속의 큰 전환점이자 의미가 되었습니다. 늘 현실에 존재하던 상황을 찍어내던 사진사가 상황을 만들어내어 찍는다는 것은 현실을 기록하는 역할만을 가지고 있던 사진이라는 매체가 사진을 그저 찍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내어 사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죠. 사진이라는 매체가 기록의 역할에서 창조의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고 거창하게도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저 ‘있는 상황을 찍는다.’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상황을 연출하여 찍겠다.’라는 작은 선택이 매체의 거대한 관습과 역할을 바꿔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한 예술가의 작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는 작은 변화들은 한 매체 전체의 판도를 바꿔버리기도 하는데요. 한 매체의 판도를 예술가의 작은 선택이 바꾸기도 하는 이러한 모습은 사실 매체가 다양해지다 못해 그 경계마저 허물어져 가는 현대미술에서는 더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연출해 버리고 있기도 하죠. '개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기엔 그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이 지나친 것일까요.



음... ... 매체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현대미술의 혼란스러움을 잘 보여주면서 개인적으로 예술가의 탁월한 선택이 돋보인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미술가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입니다. ‘예술가의 똥’이라는 제목의 선택마저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작은 통조림 90개를 만들어놓고는 각각의 통조림에 신선한 사람의 분변 30g(그램)이 들어있다고 말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손 한 뼘 크기가 되지 않은 통조림에는 노란톤의 포장과 함께 ‘1961년에 신선하게 만들어지고 포장된 사람의 분변이 들어있다.’라고 3개 국어로 적혀있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 '피에로 만초니'는 ‘너의 작품은 정말 똥이야!’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는 사람의 똥을 이용한 이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주제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사람의 똥을 작품으로 만들기로 선택했다는 부분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통조림의 내용물과 함께 붉어진 이 작품에 대한 논란을 살펴보면서 이 작가의 숨겨진 선택들이 참 탁월했다는 것을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이죠.  


사실 이 작품은 '실제 사람의 똥이 들어있는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상당한 논란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심지어 통조림이 한 번 오픈된 적이 있음에도 그 논란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통조림이 한 번 오픈되었음에도 그 내용물에 대한 진위 논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작가의 숨겨진 선택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 논란의 시작점부터 천천히 설명해 드려보자면 1961년 똥을 포장했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당시 금 30g과 같은 가격인 37달러의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하며 총 90개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한 큐레이터가 이 작품을 전시 준비하던 중 캔의 파손된 부분을 통해 악취를 맡았다는 루머가 퍼지며 캔 안에는 실제 분변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가장 먼저 힘을 받았었는데요. 피에로 만초니의 최측근들이 캔의 내용물은 30g으로 맞춰 넣어놓은 회반죽에 불과하다고 증언하며 사람의 분변이 아니라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면서 논란이 증폭되었습니다. ‘그럼 캔을 그냥 한번 열어보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장 최근 2007년에 캔 하나가 무려 1억 7천만 원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작품 훼손에 가까운 행위인 '통조림 열어버리기를' 과감히 시도하며 그 내용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간 큰 컬렉터는 쉽게 나올 수가 없었겠죠...? 



그래도 역시 돈은 사람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나요. 1989년 90개의 캔 중 하나의 캔을 소유하고 있던 미술 단체에서 드디어 캔을 오픈하기로 하는데요. 캔은 결국 이 단체에 의해 오픈이 되었지만, 캔 안에 캔이 하나 더 있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결국, 내용물에 대한 논란은 끝이 나지 않은체 한 번 오픈된 캔은 그 상태 그대로 보관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1억 7천 만원짜리 통조림 캔을 한 번 더 열어볼 용기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 단체이다보니 1억 7천만 원짜리 작품 뚜껑을 열기 위해 참 많은 회의를 했을텐데, 한 번 더 오픈하려면 더욱더 많은 회의를 거쳐야 했겠죠...? 어쨌든 사람의 똥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버리겠다는 이 선택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캔이 한 번 열렸을 미래를 바라보며 캔 속에 하나의 캔을 더 숨겨놓는 이 선택이 정말 탁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 작품 자체의 소재나 이미지는 예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남을 수 있는 선택들을 아주 탁월하게 해낸 작품인 것 같네요. 


사실 최근 이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대해 공부를 조금 더 집중해보면서 의식이라는 부분과 함께 묶어 예술가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드리며 미술 속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함께 늘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저도 아직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 라디오를 들어주시는 분들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많이 모자란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하는구나’라는 느낌 정도로 이해해주셨다면 조금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이어가며 더 좋은 이야기들로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너무… 급하게 끝내나요…? 

혼자 진행하는 거…   쉽지는 않네요… 


금방 또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 



* 본 방송 새라 미술 이유식은 팟캐스트, 팟빵 등을 통해서도 청취가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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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