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가 이동준 (1) (드레)
- 방송/새라 미술 이유식
- 2018. 6. 24. 23:17
* 아래는 라디오의 내용을 문어체로 한 번 더 편집한 글 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라 미술 이유식을 진행하고 있는 개념미술가 이동준입니다. 오늘은 '개념미술가 이동준'이라는 조금 부끄러운 제목의 회차를 준비해보았는데요. 사실 새라 미술 이유식을 제작하고 진행하는 작업을 한 지가 벌써 4년이 되었지만, 제 개인적인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언젠가는 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린 것 같습니다.
슬슬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도 조금씩 잡혀가는 것 같고, 그에 맞는 작품과 전시회도 하나씩 진행해가는 상황이면서, 라디오를 혼자 진행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제 작품에 대해 차분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좋은 시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약 4년간의 미술 이유식이 관객분들에게 현대미술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시리즈로 준비해본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에서는 작가로서의 저와 제 작품을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음... 제가 미술이라는 것을 시작했던 시점부터 이야기를 풀어보면 이해를 조금 더 쉽게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저는 처음 순수미술이 아니라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개인적인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아놓는 버릇이 있었는데요. 중학교 시절까지는 열심히 시키는 공부를 하다 어느새 부터인가 '공부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통장에 조금씩 돈을 모으며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하는 시점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다니는 시점으로 잡고 있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는 시점부터 돌연 쇼핑몰을 하겠다고 달려들었었는데요. 백만 원을 조금 넘었던 당시의 저축액으로 할 수 있는 안경테 쇼핑몰을 준비하여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 후 방학과 학기에 따라 매출이 늘고 주는 것을 반복하며 약 2년 정도를 운영했던 것 같은데요. 어느 날 평소처럼 박스를 포장하다 '평생 이렇게 박스만 싸고 있을 것 같다’라는 극심한 회의감이 몰려 왔었습니다. 디자인도 할 줄 몰라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어려우니 결국은 이렇게 평생 물건을 떼다 파는 중개업자 외에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시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게 들어갔던 RCA라고 하나요, 특별활동부라고 하나요. 어쨌든 '배낭여행' 부에 들어가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당시 지도 선생님과 함께 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극심하게 기피하는 버릇이 있어서 중학교 시절 80~90점대의 전체 평균 점수를 받았지만, 영어는 거의 포기한 상태의 30, 40점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런 영어 실력으로 태국을 여행하며 숫자 정도 이야기하는 영어와 몸짓, 발짓으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무슨 연결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으로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에 가득 차 버렸었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알아보다 영국 디자인 학교가 최고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곳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에 가득 찼었습니다. 장사를 돌연 접어버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집안에 선언하고는 어느 순간 영국 예비 유학생이 되어있었죠.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오직 유학만을 준비하며 고등학교 졸업 후 3개월 만에 출국 비행기에 탑승하게 됩니다. 정말 센 척하면서 떠났었는데, 영국 도착 후 이틀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며 '내가 왜 온다 했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빠져있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패션 디자인을 꿈꾸다 순수미술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였습니다. 사실 영국에는 대학 정규 과정이 3년이고 외국인이 정규 과정에 들어가기 전 진행하는 1년짜리 파운데이션 코스를 진행하는데요. 예술 대학의 파운데이션 과정에서는 보통 정규 학과에 진학하기 전 다양한 학과를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와 현대미술의 첫 만남은 이 파운데이션 코스의 첫 수업에서 이루어졌죠.
2주에 한 번 과목을 바꾸며 수업했던 파운데이션 코스의 첫 학기의 첫 과목으로 만났던 순수미술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예술 분야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느껴볼 수 있게 해줬던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많은 이들이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표현했던 제 생각들이 쓸모있는 곳이었고, 사진, 포토샵, 일러스트 등 쇼핑몰을 하며 독학으로 공부했던 전문적이지만은 못했던 모호한 실력의 기술들을 필요대로 섞어가며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세계였죠. 그런 2주간의 코스 동안 밤을 새워가며 만든 작품을 발표를 했을 때 받았던 박수 세례는 ‘아… 내가 할 게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은데요. 사실 당시의 영어도 상당히 짧았었다는 것 등을 생각하면 유독 크게 느껴졌던 당시의 박수 세례는 정말 의외의 것이긴 했습니다.
그 순간의 짜릿함이 '이걸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아주 강력하게 들게 했었지만, 역시나 '순수미술 해서 뭘 해 먹고 살지?'라는 고민이 너무 컸던 것도 사실이었는데요. 하지만 다양한 예술 과목들을 2주씩 체험하는 첫 학기 3개월 동안 다른 수업은 대충 들으며 이 고민만 하는 저 자신을 보고는 2, 3학기에 배우기로 선택해야 하는 학과로 결국 현대미술, 파인아트를 선택하게 되죠.
그 이후로는 무난하게 입학 인터뷰를 마치고 정규 학사 과정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었는데요. 처음에는 사회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 제 시선으로 당시 작품을 살펴보면 '사회적인 부분'에 집중했던 경향이 있었는데요. 분쟁, 교육, 국가, 기업, 개인 등의 주제를 다루는 것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이 이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친구와의 한 논쟁을 통해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술'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그와 같은 형태의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죠. 물론 최근에는 사회적인 시선이 듬뿍 담길 수밖에 없는 미술이라는 것이 결국은 사회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던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기도 합니다.
음... '미술은 결국 사회적인 부분이 듬뿍 담겨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 작가로서의 제 미술에 대한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미술에는 좋은 작품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지만, 제 미술에서 더 나은, 더 좋은 작품의 기준은 사회적인 만족을 더 많이 끌어내는 작품으로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인 만족을 끌어내는 작품이란,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미술로서 끌어내는 흥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이는 제가 개인적으로 정의하는 미술의 역할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역할이란, 일상을 바쁘게 사는 대중들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이렇게 만들어낸 생각들을 작품으로써 표현하는 것으로 작품을 보러온 대중들에게 바쁜 삶 속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생각의 촉매제 역할이 현시대 미술의 가장 이상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촉매제로서의 미술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미술의 형태가 바로 작품의 과정과 생각을 중요시하는 개념미술에 있다고 생각하여 현재는 저 자신을 개념미술가라 부르며 개념미술 형태의 작품들을 진행하고 있죠. 개념미술과 개념미술가에 대한 부분은 시작하면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질 것 같으니까요. 이 시리즈의 다음 편에서 제대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 또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굉장히 중요시하는 부분을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사회 일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기 위한 노력에 대한 부분인데요. 사회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저 자신도 결국 개인이다 보니 제 개인적인 가치관과 생각이 작품에 듬뿍 담길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종교, 정치 등 생각과 개념이 형성되어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절대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소 부모님과 아주 친한 지인에게도 종교, 정치와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지도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제 작품과 미술들 자체가 정치, 종교적인 의견들에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제 작품들이지만, 제가 종교적인 의견과 정치적인 의견을 담지 않았다면 이는 제 개인적인 생각과 관련이 없는 특정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작품에 불과하기도 하니 말이죠.
제 개인적인 의견이 다양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 하나의 독립적인 제 작품들을 흔드는 상황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옛 과거 지배계층이었던 종교 세력과 정치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미술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에 해방되며 시작된 현대미술이란 종교, 정치라는 개념과 평행 선상에 있는 개념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혹은 생각의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제 작품들을 통해 제 작품을 보아주시는 관객분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저의 바람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정된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돕는 새로운 의문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하는 바람이죠.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며 제 이야기를 해보는 부끄러운 시리즈를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은근히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네요. 이야기를 진행하며 회차가 늘어날 수도 혹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일단 7개의 부끄러운 회차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은 제가 저 자신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개념미술가’라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 같네요.
혹시 제 작품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제 작품의 과정은 시작 초기부터 현재까지 도니닷컴에 정리되어 있으니까요. 혹여, 정말, 궁금한 분들이 계신다면 정보란의 링크를 통해 구경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부끄럽게 마무리하도록 해야겠네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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