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가 이동준 (4) 가끔 하는 전시 (드레)


* 아래는 라디오의 내용을 문어체로 한 번 더 편집한 글 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라 미술 이유식을 진행하고 있는 개념미술가 이동준입니다. 오늘은 ‘가끔 하는 전시’라는 제목과 함께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데요. 지난 회차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미술을 예술가, 관객, 작품, 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나눠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요소에 전시회를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려를 심려 깊게 할 정도로 전시회는 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듯, 이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회는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필수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죠.

‘가끔 하는 전시’라는 이 회차의 제목은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기획한 새로운 형태의 전시회 이름이기도 한데요. 회차를 ‘전시회’라고만 부르자니 딱딱하기만 한 기분도 들고 사실 전시회에 대한 제 가치관과 신념 같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압축되어 만들어진 것이 이 ‘가끔 하는 전시’라는 전시 형태이기도 하기에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이 ‘가끔 하는 전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이번 시리즈를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있기는 한가 보네요.

음… 일단 부정적인 느낌의 스토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제가 전시회라는 것에 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던 부정적인 사건의 시점부터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회에 대한 이런 생각의 시작은 한 전시를 방문하며 미술의 부정적인 현실을 맞닥뜨린 시점부터였는데요. 서울의 한강처럼 런던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템즈강 변의 3층 규모 거대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던 한인 그룹 전시회를 방문한 시점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그 당시에는 사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미술 이유식'을 함께 진행할 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시점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크게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는 작품도 보며 이야기하는 척 좋은 분을 만나 뵙고 부탁을 드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회 첫날의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픈 시간이기도 하니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나이가 조금 있으신 그룹장으로 보이는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꽤 놀라며 전시장을 둘러보았었죠. 텅 비어있는 전시장의 모습은 사실 미술 전시회에서 흔한 모습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오픈 날의 오픈 시간마저 작가가 자리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막 미술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던 대학생 1학년에게는 꽤 충격적인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전시회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순간이었죠.

전시회 관람을 마무리하며 작가분들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참가하신 분들 정보라도 얻기 위해 입구를 지키고 계시던 관계자분에게 전시 팜플렛이라던가 도록 등을 볼 수 있냐고 부탁드렸었는데요. 도록은 전시 참가한 작가분들에게 나눠질 것들을 잠시 보는 것이 가능했고 팜플렛은 흐린 흑백으로 프린트된 A4용지 종이를 받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너 건너들은 이야기로는 참가자 한 명당 영국 돈으로 500파운드, 한국 돈으로 약 80만 원 정도를 지불하며 전시를 진행했다고 들었는데요. 기억이 흐릿하지만, 최소 15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은 금액으로 도록은 판매 자체가 힘든 물건이니 어쩔 수 없다 하여도 기본적으로 전시를 소개하는 팜플렛에는 최소한의 성의가 들어가 있었어야하지 않았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당히 까다롭게 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방문하는 관객을 위한 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전시회였던 것이죠.

미술 전시회의 텅 빈 전시관이 현재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선배들이 노력해도 쉽게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당시로써는 애초에 노력조차 없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품게 만들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 미술에 대한 꿈을 꾸며 파릇했던 당시의 저로서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시 방문했던 그 전시는 '템즈강 변의 좋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걸고 이런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다.'라는 전시 경력 한 줄을 위한 전시일 뿐, 그 외의 목적은 없어 보였으니 말이죠. 

마냥 '나도 크게 전시회하고 큰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던 당시의 제 생각은 이 기회를 통해 '나만의 전시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요. 먹고 살기 힘든 곳인 줄은 알았지만,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힘든 곳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전시회라는 것에 관한 생각의 큰 틀마저 존재하지 않던 당시의 저로서는 전시회라는 것에 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죠.

이때부터 좀 다른 형식의 전시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또 '그룹전에는 참가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인 작가들의 그룹전시라는 것이 전시회에 대한 경험을 늘리는 것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사실 학교 과제를 위해 강제로 참여해야만 하는 그룹전들이 있기에 그룹전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이런 과제를 위한 그룹전으로 충분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생각할수록 '나도 전시회 하고 싶다...' 라고 마냥 생각하던 생각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요. 넓은 공간에 제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의 모습은 생각하면 참 좋았지만, 텅 비어있을 그 모습이 참 씁쓸할 것만 같다는 생각 또한 들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작품 하나를 구상하는데 길게는 반년 넘는 시간을 할애하는 제 작품들에게 넓은 공간은 그리 맞지 않는 공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이 당시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던 전시 형식은 가수가 새로운 앨범을 내놓고,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진행하는 쇼케이스 형식의 전시를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 있었는데요.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며 소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설명할 수 있는 미술, 개념미술'을 하겠다고 하는 제 개인적인 목적과 의도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또, 최소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구상으로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스타일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쇼케이스라는 것이야말로 많은 관심과 함께 방문해주시는 많은 관객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혹은 그 한계를 최대한 이용해보기 위한 시도를 해본 것이 바로 ‘가끔 하는 전시’에서 시도해보았던 예약 관람 형태의 전시였는데요. 어차피 많은 관객분을 끌어모을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라디오와 도니닷컴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와주시는 한 명, 한 명의 관객분들을 최대한 만족시켜드려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전시 형태였습니다. 간단하게 많은 분을 모셔놓고 하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방문해주시는 관객 한 분, 한 분을 위한 쇼케이스를 여는 것과 같은 것이었죠.

한 명, 한 명의 관객분들에게 보여드리는 쇼케이스이면서 전시장 내부에서의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보려는 시도와 함께 일반적인 형태의 전시회에서 오픈 날 혹은 오픈 하루, 이틀 전 진행하는 프리뷰 행사를 차용한 요소들을 첨가하기도 했는데요. 프리뷰 행사에서 음식 등을 제공하는 케이터링 서비스 등을 간소화시켜 예약하고 방문해주시는 모든 관객분에게 제공해보는 시도였죠.


이 전시의 과정을 간단하게 나열해보자면 관객분들이 전시 공간에 방문하는 것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며 전시에 대한 짧은 안내를 한 후 관객분들을 먼저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안내하는데요. 이후 잠시 관람 시간을 드리고는 제가 공간에 입장하여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작품의 작가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편안한 전시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지 않게 하도록 정말 눈치를 많이 보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지루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상처받지 말고 얼른 정리하고 나오자는 각오와 함께 전시 공간에 입장하고는 했었는데요. 오히려 돌아오는 다양한 질문들에 다음 예약 관객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생각해놓은 시간을 초과할 만큼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나오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는 뿌듯한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잠깐 쓱 보고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전시회라는 모습과는 다르게 관객분들이 자발적으로 1시간 이상을 전시가 펼쳐지고 있는 공간을 즐기고 가끔은 2시간 30분의 한정 시간을 넘어 ‘죄송하지만, 다음 예약을 위해 다음에 또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했던 순간들은 신인 작가로서는 짜릿함을 느끼게도 해주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말은 아주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2주 동안 진행되었던 이 ‘가끔 하는 전시’의 첫 전시는 15팀 정도가 다녀가 주신 적은 관객의 작은 전시회였는데요. 개인적으로 느꼈던 관객의 만족도에서만큼은 작다고만은 생각되지 않는 작가로서는 정말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성과였습니다.

사실 이 ‘가끔 하는 전시’라는 예약제 전시회의 구상은 많은 분이 와주시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구상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관객 한 분, 한 분을 만나 뵈며 작품에 관해 설명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이 방식은 혹여 다음에 많은 분이 제 전시를 찾아주시는 상황이 온다고 하여도 유지하고 싶은 방식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한 것들을 풀어내는 개념미술을 하는 저로서는 작품을 관객분들에게 소개해드리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작품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개념과 의문들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는데요. 이 과정이 제 작품 속의 개념과 의문들에 대해 오히려 제가 공부하게 되는 효과를 얻으며 다음 작품을 위한 더 탄탄한 개념의 기반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오직 관객분들만을 위한 전시회만은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진 관객분과의 대화에서는 약간의 생각 차이가 존재하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대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했었죠. 한길만 파고드는 저와 같은 성격에는 이렇듯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다른 의견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의 다양한 의견 모두가 또 다른 생각의 기반이 되는 흥미로운 요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재미난 순간이었죠.

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번 회차의 제목을 ‘가끔 하는 전시’라고 적어놓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이 가끔 하는 전시의 이야기가 반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전시회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가치관들이 모두 담겨있는 전시 형태이기에 이러한 전개가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전시회라는 것이 결국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을 내놓는 그 공간이 어떠한 모습이 될지는 또 예술가에게 달린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예술가의 생각과 취향 등과 함께 만들어진 그 공간과 작품의 모습이 조합된 전시회는 결국 방문한 관객들의 의견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져 버리기도 하는 것이겠죠.

이번 회차는 거의 이 '가끔 하는 전시'를 홍보하는 것에 가까운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듬뿍 담긴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첫 번째 가끔 하는 전시에 방문해주신 분들에게 '어쩌면 올해 안으로 한 번 더 전시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한 두 해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라 미술 이유식도 작품 구상도 열심히 하며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하도록 해야겠네요.

이왕 홍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김에 살짝 홍보하자면, 이 '가끔 하는 전시'는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과 함께 늘 전시 기간 동안 무료로 예약을 받으며 진행할 계획이니 혹여 다음 전시 소식을 들어주신다면 부담 없이 예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다음 회차로는 저의 대학교 졸업 작품이자 이 첫 가끔 하는 전시의 공식적인 첫 작품 ‘금붕어 : 티니’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하는데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에 끝판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짙은 홍보 색을 남긴 회차를 끝마치도록 해야겠네요.

빠르지는 못하지만, 차근차근 열심히 준비하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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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