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과거를 거절하다 (드레)


* 아래는 라디오의 내용을 한 번 더 편집한 글 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라 미술 이유식을 진행하고 있는 개념미술가 이동준입니다. 7편 분량의 긴 개념미술가 이동준 시리즈를 끝마치고 오랜만에 본래 회차로 돌아와 이렇게 미술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정말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요. 오랜 시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느라 고생해주신 청취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이렇게나마 짧게 전해드립니다.

음... 오랜만에 일반 회차로 돌아온 오늘은 ‘모더니즘, 과거를 거절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미술 이야기를 들려드려 볼까 하는데요. 현재 우리가 혼란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현대미술이라는 것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라는 단어에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모호함이 숨어있는데요. 현대라는 단어와 함께 완성되는 현대미술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아도 그 모호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현대미술’이라는 단어 안에는 그 시간적인 시기의 나눔이 상당히 모호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현대미술은 가끔 근현대미술을 뜻하기도 하고, 근현대미술 이후의 시간을 뜻하기도 하며 또 가끔은 현재라는 지금 이 시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영어 안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모던아트(Modern Art)라는 현대미술의 영단어는 근현대와 같은 모던(Modern)이라는 시기를 뜻하기도 하고, 근현대 이후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포스트 모던(Post Modern)이라는 시기를 뜻하기도 하며, 한국어와 똑같이 현재라는 이 시점을 뜻하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 시점부터 길어야 200년 전까지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는듯한 이 ‘현대'라는 단어가 이런 모호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요. 사실 우리의 시간이 점점 흘러가며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라는 단어가 가지는 현재라는 그 시간의 기준점 또한 계속해서 흘러가며 변해가고 있으니 말이죠.

현대라는 단어의 영단어 '모던(Modern)'의 유래를 찾아보면 이 시간의 기준점의 변화를 흥미롭게 느껴볼 수 있는데요. 지금 현재 이 시간의 우리가 가진 현대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높은 빌딩과 철제 기계와 함께 문명화가 이루어진 도시의 모습을 대표적인 이미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던하다.'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중세시대가 시작되던 5세기 말경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가 현대, 모던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는 1500년 이상의 시간적인 차이를 가진 시대에서부터 사용되던 단어인 것이죠.

이 '현대적이다. 모던하다.’라고 표현되는 현대, 모던이라는 단어는 ‘현재를 과거와는 다른 시대로 인지하는 역사적인 시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설명되는데요. 아마도 중세의 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그들이 사는 시대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며 자신들의 시간을 역사 속에서 고전 시대와는 다른 시대로 의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 사용되었던 단어는 영어 모던의 기원인 라틴어 모데르누스(Modernus)인데요. 발음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스펠링으로는 거의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방금, 지금, 현재를 뜻하는 라틴어 모도(Modo)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인데요. 당시는 옛날, 과거, 고대를 뜻하던 안티쿠스(Antiquus), 영어로는 앤틱(Antique)이죠? 이 말의 반대말로서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 모데르누스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며 나타난 말인 것이죠.

이처럼 '현대적이다, 모던하다.’라는 말에 의미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적이다.라는 간단한 의미 뒤에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또 이는 그저 다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의 다름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단어인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의 차이와 다름을 뜻했던 이 단어는 조금씩 조금씩 '현재는 과거보다 나은 것이다.’라는 우월성에 대한 또 다른 숨은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더 우월한 것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변화 이후의 현상들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인데요. 이후 18세기까지의 현대라는 단어는 고전과 중세라는 그들의 과거에서 의미를 찾으며 ‘현재는 암흑시대인 중세를 지나 고전을 계승했기에 더 낫다.’ 혹은 ‘현재는 종교의 의미를 몰랐던 고전과는 다른 중세를 계승했기에 더 낫다.’라고 말하는 현재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 근거를 과거에서 찾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각 시대 현재의 우월함을 형성하기 위해 역사 속 과거의 한 부분을 이용했다는 사실은 ‘현재는 이전의 과거를 닮았기에 과거보다 낫다.’라고 말하는 어찌 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이 드는 부분인데요.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은 ‘고전의 판타지가 후세에게 걸어놓은 주술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이런 고전의 판타지는 지금 이 시간 우리의 현대라는 범위에 해당하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깨지기 시작하는데요. 모던과 현대라는 단어가 ‘현재의 것이 과거의 것보다 나은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죠. 과거의 무엇인가를 찾기보다는 새로움을 찾고, 과거의 무엇을 찾는다고 하여도 그 목적이 현재의 새로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현시대가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시대라 말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를 근거로 하여 현재의 우월성을 찾기보다는 현재의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새로운 방향성을 찾은 현대에서도 과거라는 것은 아직 상당히 대단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는 듯한 잔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 속에서 사용되는 고대라는 수식어의 쓰임을 살펴보면 이를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요. 게임, 소설 등에 등장하는 고대의 마법사, 고대의 검사, 고대의 검과 같은 고대라는 수식어와 함께 만들어지는 단어들은 마치 대단할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된 게임과 소설 속에서는 이런 고대의 인물과 물건이 일반적인 인물과 물건에 비해 월등히 좋은 능력과 능력치를 가진 경우가 많죠.


한 번은 한 게임을 플레이하다 문득 고대의 검이라 이름 붙은 검이 일반 검보다 훨씬 좋은 능력치를 가진 것을 보고는 고대라는 수식어가 족히 몇백 년 전에나 만들어졌을 물건으로 훨씬 후진적인 기술로 만들어졌을 텐데 어떻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 나아진 기술력으로 완성된 일반 검보다 훨씬 더 좋은 능력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요. 물론 상상력과 함께 만들어진 게임을 하며 이런 현실적인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창작자가 만들어낸 다양한 게임과 소설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일반적으로 등장하며 많은 이용자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의 꽤 큰 부분이 가진 시각이라 판단하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고대에 만들어진 물건이 현대적인 기술과 함께 만들어진 물건보다 더 무겁고 더 단단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사실 우리도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원천이 어디인지 모르는 우리의 판타지 속에는 '고대에는 현대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시각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죠. 어쩌면 피라미드와 같은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처럼 그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판타지가 만들어낸 막연한 두려움에 의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과거보다 기술적으로 확실하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혹시 모를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이죠.

사실 저는 고대의 철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런 고전과 고대에 대한 막연한 숭배 혹은 두려움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원전에 존재했던 철학자의 생각이 현재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의 철학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대단한 것이며 인정과 존경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지만, 그들을 마치 위에서 말했던 고대의 마법사, 고대의 검사처럼 막연히 소설 속의 대단한 존재처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생각과 철학은 이후의 철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결국 계급사회와 독재적인 국가 체제가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 말했던 고대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고대 사람에 불과하기도 하니 말이죠.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이 시간의 현대는 처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위한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관점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5세기부터 꾸준히 바뀌어온 '현대', '모던'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인해 아직 그 혼란은 계속되고 있기도 하지만, 지금의 현대는 과거라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먼 과거 역사 속의 판타지를 이성적으로 밀어내며 현대만의 시각을 만들어가고 있죠. 지금 이 시간의 우리는 어쩌면 그저 현재가 더 우월하다는 근거를 찾아 헤매기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한 미래를 목적으로 현대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첫 시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준비한 ‘모더니즘, 과거를 거절하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랜만에 일반 회차를 진행하니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저도 조금 더 나은 미술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미래의 새라 미술 이유식을 위해 더더욱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모든 새라 미술이유식 회차들은 도니닷컴에서 영상과 글과 함께 정리하고 있으니까요. 혹시 관련 이미지와 글과 함께 보시고 싶은 분들은 한 번 방문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정보란에 적어놓은 이메일을 통해 다양한 부분들 질문해주시고 문의해주셔도 되니까요. 언제든지 재미난 미술 이야기와 질문들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또 금방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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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