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망했어! 그림은 망했어! (Painting is washed up!)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이제 회화는 망했어! 누가 저 프로펠러보다 더 멋진 걸 만들 수 있겠어?'

'Painting is washed up! Who will ever do anything better than that propeller?'


마르셀 뒤샹은 1912년 항공 박람회를 관람하고 난 후 친구에게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누가 저 프로펠러보다 더 멋진 걸 만들 수 있겠어?'라는 그 뜻이 무엇인지 은근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이죠. 오늘은 이런 궁금증이 유발되는 마르셀 뒤샹의 말에 의미에 대해서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사실 회화보다 더 멋진 프로펠러라니 '그 말 뜻을 알아서 뭐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이 말은 마르셀 뒤샹이 현대미술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죠.


사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말했던 '회화는 망했어!'라는 말을 간단하게 생각해보자면 회화/그림이라는 미술 분야는 전혀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00년이 지난 지금의 미술 시장에서 가장 많은 거래량과 함께 매년 미술 역사상 최고 가격을 갱신하고 있는 미술 분야가 바로 회화(Painting)라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1912년에 항공 박람회를 관람한 마르셀 뒤샹이 1년의 시간이 지나 1913년에 내놓은 작품을 살펴보면 당시 회화의 위기에 대해서 외쳤던 마르셀 뒤샹의 생각이 정말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 (1913)


이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라는 작품이 바로 마르셀 뒤샹이 항공 박람회를 관람한지 1년 만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인류 최초로 누구나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기성품을 재료로 만들어진 미술품이죠. 자전거 바퀴를 의자에 거꾸로 달아놓은 참 오묘한 모습인데, 기분 탓인지 은근히도 비행기의 프로펠러와 닮은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회화는 망했어!'라고 외치며 비행기의 프로펠러를 회화의 라이벌로써 생각하는 뒤샹의 외침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역사적인 배경들이 숨어 있습니다. 당시는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지속적인 비행을 성공시킨 1903년에서 겨우 10년이 지난 시기로 일반인들에게는 비행기를 거의 처음 내보이던 시기였는데요.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새 뿐이라고 믿고 있던 시절 절대 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철 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버리는 비행기의 모습은 놀라움과 충격 그 자체였던 시기였죠. 마르셀 뒤샹의 '회화는 망했어!'라는 말의 포인트는 어쩌면 사람들이 비행기를 보고 느꼈던 이 놀라움과 충격에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는 것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주는 행위는 사실 과거 오직 예술가들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죠. 과학이라는 분야는 18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하고 눈부신 발전을 일궈냅니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과학이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기 전까지의 세상은 지금 보기에는 굉장히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세상이었죠. 과거 사람들에게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볼거리들은 겨우 거대한 건물과 거대한 건물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 그리고 각종 미술품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사진기가 본격적으로 이용되는 1860,70년대 전까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방법은 오직 거울과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 뿐이었죠.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자신의 얼굴을 종이 위에 똑같이 그려낸 초상화라는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신기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표현해놓은 거대한 벽화들은 진정 신의 세상처럼 보이며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런 놀라움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던 초상화, 종교 그림과 같은 회화 작품들은 이제 박물관들에 한 대 모아져 교양적인 용도로 관람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느낌의 볼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그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당시 마르셀 뒤샹이 '회화는 망했어!'라고 외치던 회화에게 찾아온 위기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더 이상 놀라움과 충격을 만들지 못하는 위기에 빠진 미술은 비행기와 같은 과학이 만들어낸 현대의 새로운 경이로운 볼거리들을 이겨내고 미술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놀라움과 충격을 불러올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 '샘(Fountain)' (1917)


그리고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마르셀 뒤샹이 1917년에 작품으로서 내놓은 이 남성용 소변기 '샘(Fountain)'이라는 작품은 관객들에게 '이런 것도 미술이냐.'는 놀라움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과학이 만들어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비행기가 주는 놀라움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놀라움과 충격이었죠. 하지만, 관객들의 눈길을 다시 한 번 미술로 가져오기에는 아주 적절하고 탁월한 종류의 놀라움이자 충격이었습니다. 눈으로만 예쁘고 경이로운 것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 '이것도 미술이라고?'라는 생각과 함께 만들어지는 놀라움과 충격처럼 작품의 겉모습이 아닌 관객 본인의 생각과 개념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는 현대미술에서 나타난 새로운 미술 분야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죠.


본인의 작품 '샘' 앞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의 '마르셀 뒤샹'


제 개인적으로는 서양 미술에서 만들어진 이런 형태의 변화는 미술을 현대사회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현재의 미술들이 전시되는 갤러리보다는 박물관에서 전시되며 보존되어지고 있는 동양화를 보고 있자면 이런 개인적인 생각에 조금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죠. 물론 동양화는 아직 분명히 거래량이 있고 전시도 되어지고 있으니 아직도 생존해있는 미술의 분야라는 반박에는 확실한 반박 거리가 없으니, 확실히 빈틈이 많이 존재하는 생각입니다. 아직 해결된 부분보다는 생각하고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더 많죠.


어쨌든 이렇게 '회화는 망했어(Painting is washed up!)'라고 외치던 뒤샹의 말과는 다르게 회화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전혀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높은 거래량과 가격, 전시량을 가진, 가장 빠르게 흐르고 있는 미술의 분야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만약 뒤샹을 비롯한 당시의 미술가들이 변기통을 미술 작품으로 내놓아버리는 이런 시도가 없었다면, 그림은 과거 한 시대의 문화로서 시대별로 정리된 고전과 고대의 공예품들과 같은 모습으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시대적인 변화에 맞춰서 변화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일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문화라는 아주 잔인한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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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