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서열
- 에세이/미술과 사회
- 2016. 5. 20. 07:49
리차드 잭슨의 나쁜 강아지(Bad dog)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문화는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합니다. 독서와 게임은 둘 모두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이지만, 책을 읽으며 취미를 즐기는 모습은 게임을 하며 취미를 즐기는 모습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처럼 문화에 서열을 매기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잘못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취미로서 선택된 독서, 게임과 같은 문화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결정된 것이니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존중받아야 하는 개인의 취향과 함께 선택된 독서와 게임이라는 이 두 문화는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 암묵적인 서열이 만들어지며 동일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이념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개인의 취향을 무시하고 암묵적으로 문화에 서열을 매겨버리는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사실 미술은 이처럼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문화적인 서열이라는 존재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미술, 독서, 게임. 이 세 가지 문화의 문화적인 서열을 간단하게 나눠보자면 미술, 독서, 게임 순으로 어렵지 않게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미술과 독서는 비등비등한 상위 서열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지만 게임은 확실히 미술과 독서에는 밀리는 서열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문화적인 크기와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이 서열을 다시 매겨보자면 게임, 독서, 미술 순으로 그 서열을 매길 수 있습니다. 산업적인 크기와 대중적인 인기에서만큼은 독서와 미술이 게임을 이겨낼 수가 없는 반전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미술은 작은 시장과 작은 대중적인 인기와는 상반되는 가장 높은 서열에 앉아 최고 서열의 문화로서 고고함을 뽐내고 있죠. 이런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 모습은 문화적인 서열을 나누는 사회적인 시선의 기준이란 무엇인지가 참 궁금해지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사회적인 시선이 개인의 취향을 무시하며 문화에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특정 문화가 가진 시장의 크기와 인기도 문화적인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증거인 인기와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게임이라는 문화는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게임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꼬리표처럼 붙이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분명 다수의 취향이 게임이라는 문화와 함께하고 있음에도 부정적인 시선이 게임이라는 문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함께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이들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문화들에 서열이라는 선을 그어놓을 수 있는 사회적인 시선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게임 중독이라는 게임이라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은 ‘인터넷 중독’이라는 명칭과 함께 정신적인 질병으로도 구분이 되어있을 정도로 미술과 독서가 가지는 부작용보다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 대상입니다. 하지만 완벽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부작용이라는 것은 어떤 문화에서나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한데요. 각 문화가 가진 인기와 시장이 문화적인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문화가 가진 부작용을 이용해 서열을 낮추는 것은 그저 사회적인 시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일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많은 이들의 취향이 게임이라는 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인 시선은 어쩌면 더욱 많은 이들의 생각과 취향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인데요. 이처럼 다양한 이들의 취향과 생각이 모이면서 생겨난 복잡함은 말로는 풀기 귀찮아지는 모순 혹은 아이러니함들의 생존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문화적인 서열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복잡함으로 인해서 생겨난 모순 혹은 아이러니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죠. 사실 저는 이처럼 복잡함이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부분들이 가득 찬 ‘문화적 서열’이라는 단어를 ‘편견’이라고 해석합니다.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결정되고 형성된 문화들이 모두 같은 존중을 받지 못하고 서열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정당하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모습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결국 문화적 서열이라는 편견은 존재하지 않아야 마땅한 것인데, 편견의 수혜자로서 높은 서열에 앉아 그저 다른 문화 위에 서있으려 하고 있는 모습은 겉으로는 존중을 말하며 속으로는 다른 이들의 취향을 무시하는 모순적인 사회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동일하다고 말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이란 사회적인 시선과 같은 편견과 함께 나눠진 서열이 아니라 그저 존중받아 마땅한 개인의 취향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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