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씨의 그림과 모두의 불편함
- 에세이/미술과 사회
- 2016. 5. 23. 06:53
대작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조영남씨와 그의 그림들
최근 조영남씨의 그림 대작 사건과 함께 미술계가 시끌시끌합니다. 미술 전문가들을 포함한 다양한 이들이 내놓는 엇갈리는 의견들과 함께 전례 없는 미학적인 토론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오는데요. 대중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조영남’이라는 인물의 작품 이야기이기에 더욱 이렇게 대중 전체의 의견이 반영된 폭넓은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에 앞서 가장 큰 의문으로서 제기되고 있는 ‘화가 조영남이 제공한 아이디어를 그려낸 대작 화가의 대작 그림은 과연 조영남의 작품이 맞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개인적인 견해부터 먼저 말씀을 드려보자면, ‘인간적으로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나 미학적인 견해로서는 조영남씨의 작품이 맞다.’라는 의견입니다. 많은 기사들을 읽어보면 조영남씨가 제공한 아이디어를 대작 작가가 90퍼센트 그린 후 조영남씨가 10퍼센트의 마무리와 사인을 하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내놓는 작품 제작 과정을 강조하며 조영남씨가 그림을 그린 부분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림을 조영남씨가 그렸는지 혹은 대작 화가가 그렸는지 대한 여부는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이 시대의 미술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현대미술이라는 이 미술 시대에서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그저 작가가 생각한 이미지를 완성해내는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죠.
과거 시대에서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눈앞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기술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사진, 프린터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술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들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기술의 대체재가 생겨난 것과 같은 것인데요. 물론 직접 손으로 시간을 들여서 그려낸 그림이라는 이미지와 사진기로 찍고 프린트로 뽑아낸 사진이라는 이미지는 그 성격이 많이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기의 초기 모델은 빠른 스케치를 원했던 화가의 발명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사진 기술이 발전하며 사진기의 현실 재현력이 높아질수록 화가들은 현실 재현을 포기하고 추상화를 향해서 변화해갔다는 절묘한 시기의 겹침은 사진과 그림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죠. 이와 같은 변화의 시기는 19, 20세기의 시점으로 산업혁명과 함께 기계의 노동이 시작되며 현대 시대에 들어섰다고 평가되는 시기와 일치하는데요. 어쩌면 탁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계들에게 노동을 맡기고 (혹은 노동이라는 영역을 빼앗기고)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생각과 창작이라는 영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당시 시대의 시대적인 변화가 미술에도 찾아온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 화가의 기술을 이용한 오랜 노동의 집합체인 정밀묘사 형태의 그림은 사진기라는 기계에게 맞겨지고 인간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세상을 비현실적으로 그리는 달리의) 초현실주의, (세상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세상을 그리지 않는 몬드리안의) 추상화와 같은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죠.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 '샘(Fountain)'
하지만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추상화와 같은 그림은 분명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 정밀묘사 형태의 그림보다는 생각과 창작이라는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의 창작 영역이 많이 사용 되는 그림이었으면서도 아직은 화가가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인간의 노동력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이었습니다. 이런 노동력을 완전히 필요치 않고 오로지 작가의 생각과 창작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미술이 바로 공장에서 찍혀져 나오는 기성품들을 이용한 작품들인데요. 이 부분을 가장 대표하고 있는 예가 바로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입니다.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을 하나 해놓고는 세상에 내놓아버린 작품이죠. 심지어 변기통에 사인된 이름은 마르셀 뒤샹 본인의 이름조차도 아니었습니다. 변기통에 본인의 이름도 아닌 이름을 사인하고는 내놓은 이 ‘샘’이라는 작품은 현대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작가의 노동력이라고는 변기통 위에 해놓은 싸인 정도가 다라고 할 수 있는 오직 작가의 의도와 생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작품입니다. 일부 화풍에 얽매여서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당시 미술에 대한 마르셀 뒤샹의 반항이 작가의 의도이자 생각으로서 작품의 개념을 채워주고 있는 개념미술이 되어버린 것이죠. 사진기가 하지 못하는 다양한 그림들(초현실주의, 입체파, 추상화 등)을 그려내던 화풍들의 미술에서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미술계에 이제는 작가의 의도와 생각만으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반항을 보여주며 현대미술에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낸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말씀드리기 위해 많은 부분들을 생략해버려서 글을 읽으시며 휙, 휙 지나가시는 느낌이 나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최근 200년의 미술사를 훑어보면 미술은 작가의 노동력보다는 생각과 의도, 개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과 함께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대작 화가에게 제공했다.’고 말한 조영남씨는 사실 미학적으로는 잘못된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옳고 그름의 영역이 확실하지 않은 미술이라는 세상에서 혹은 캔버스 위에 선 하나 그어놓고도 작품이 되는 미술 세계에서 남이 그린 그림 위에 덧칠 조금하고 작품으로 내놓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확실하게 조영남씨에 대해서도,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 조수를 고용하고 그림을 완성한다는 미술의 관행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이런 대중의 불편함은 어쩌면 대중이 미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평소 이미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적이었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미술은 대중에게 작가의 손길 하나하나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평소 미술이 가진 이미지와 반전되는 조수에 의한 작품 제작이라는 미술의 관행은 대중에게 어이없다는 감정과 비슷한 불편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의 미술계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미술가가 조수를 고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일은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는 관행이면서 현대미술의 논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 부분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조영남씨가 조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것은 어쩌면 미술인들이 그저 ‘이미 많은 작가들이 행하는 관행이다.’라고만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대중과 미술인 모두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 조영남씨는 이런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대중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평균적인 지식수준을 상당히 올려놨다는 것인데요. 미술계가 천천히 이뤄냈어야 하는 일을 모두가 불편해하는 이가 해냈다는 사실은 조금은 부끄러운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그 논란의 장본인이 누가 되었든 모두가 어떤 것에 대해서 토론하고 알아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인문학이 발전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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