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을 알다. Part 1 [ 1 / 2 ]

'익숙하다.'와 '안다.'라는 단어는 참 오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말장난 같을 수 있지만 우리는 가끔 익숙한 것을 알지 못할 때가 있고 또 알고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익숙하게 행동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알고 행동하고 있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또 이런 오묘한 관계를 가진 '익숙하다.'와 '안다.'라는 단어들을 문화와 미술에 대입시켜 생각해보면 더더욱 흥미로운 부분들이 등장합니다. 문화라는 것 또한 늘 우리가 속해 있으면서도 너무나 익숙하여 문화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할 때가 있는데요. 본인이 속해 있는 문화가 가진 특징을 그 문화만의 특징이라고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이와 같은 부분의 예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각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문화라는 존재는 미래에서 과거를 알아내고 이해하기 위한 요소로서도 탁월한 존재인데요. 이런 문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작은 카테고리처럼 존재하는 미술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심지어 가끔은 그 문화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 있을 정도로 만들어질 당시의 문화와 이야기가 듬뿍 담겨있는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고야(Goya)의 그림 '알바 공작부인(The black Duchess)'


개인적으로 이렇게 당시의 문화를 알고 있는 것으로 한층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떠올리라면 저는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고야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저 그림만을 보자면 우리가 흔히 고전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을 그려낸 유화처럼 보일 뿐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이나 의상의 정체,  손짓 등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림은 한층 더 흥미로운 존재로 변하기 시작하죠. 일단 고야와 이 알바 공작부인의 숨겨진 관계는 계급이 존재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둘이 연인 관계였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연인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로맨틱한 단어이지만 평민 출신의 고야와 공작이라는 계급을 가진 알바라는 여인은 당시 사회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신분을 뛰어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림 '알바 공작부인' 속 공작 부인의 손과 손이 가리키고 있는 바닥을 확대한 사진 

이런 시대 상황으로 인해 이 둘의 연인 관계는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요. 고야는 이와 같은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한 진실을 이 그림에 은밀히 담아버립니다. 그 은밀한 진실을 담아낸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반지인데요. 그림 속 여인 알바가 착용한 반지를 확대하여 들여다보면 중지에 끼워진 왼쪽 반지에는 '알바' 그리고 검지에 끼워진 오른쪽 반지에는 '고야'라는 글씨가 의도적인지 조금은 알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라는 붙어있는 두 손가락에 함께 끼워진 반지 두 개에 이 둘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죠. 또 그런 두 반지 중 하나가 끼워진 검지가 바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요. 손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 지점인 바닥을 보면 'Solo Goya(오로지 고야)'라고 적힌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오로지 고야'라고 적힌 이 글씨는 대놓고 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 글씨가 참 재미있는 것이 고야가 그렸던 원작의 모습에서는 'Solo(오로지)'라는 글씨가 유화로 한층 덮어진 채 가려져 있었지만 복원의 과정을 거치며 덧칠이 조금씩 벗겨지자 숨어있던 글씨가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오로지라는 글씨를 바닥에 적어놓고는 그것을 가릴 수밖에 없었던, 고야가 당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지는 것이죠. 또, 그녀가 그림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이 평민의 민속적인 의상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존재하는데요. 공작이라는 귀족 계급의 여성으로서 서민의 민속적인 의상을 입는다는 것은 신분적인 초월을 원했던 고야의 바램이 담겨있다고도 해석됩니다. 또 한 간에는 이 둘의 사랑은 그저 고야의 짝사랑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만약 정말 짝사랑이었다면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성을 마음대로 그리며 조정 해놓는 모습이 조금은 스토커를 보는 듯한 반전적인 감정의 느낌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숨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그저 흔한 고전의 유화로만 보였던 이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그림이 하나의 흥미로운 그림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이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그림의 흥미로움이 화가 고야와 공작부인의 은밀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관계를 아는 것으로 흥미를 낚아챌 수 있는 작품이라면 과거 문화 속 사람들의 익숙함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흥미로움을 낚아낼 수 있는 작품도 존재합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풀 밭 위의 식사가 이런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죠.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그림 '풀 밭 위의 식사(The Luncheon on the Grass)'


위 그림이 앞에서 언급했던 마네의 그림 '풀 밭 위의 식사'입니다. 인상주의의 대가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그 유명세가 대단해 이미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신 분이 많으실 텐데요. 이 그림도 고전의 그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나체가 등장하는 누드화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마치 현재의 성인 컨텐츠와 같은 외설적인 느낌이 가득한 그림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의 나체는 사실 오로지 여신을 그려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오직 여신만이 나체로 그려질 수 있으면서 나체가 하나의 신성한 표현처럼 존재했던 당시 프랑스 문화 안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들 옆에 꾸밈없이 나체로 앉아있는 일반 여성의 모습은 음란적이고 외설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요. 알려진 바로는 이 '풀 팥 위의 식사'를 그렸던 마네는 이와 같이 외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요인을 의도적으로 채택하며 당시 관객들에게 계산된 충격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던 '살롱전'으로의 출품이 거절되었는데요. 그 후 마네는 소위 낙선전이라 불리는 전시에 이 그림을 내놓았는데 전시 중 부유층 부인들의 계란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그 외설적인 느낌이 강력한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의 눈에는 그저 익숙한 고전의 누드화로 보이는 이 그림은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외설적인 누드화였는데요. 현재라는 시간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익숙함과 과거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과거 사람들의 익숙함이 달랐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은 바로 '어떻게 우리는 저 먼 나라 프랑스의 과거 누드화에 익숙함을 느끼고 있을까?'입니다. 마네가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파리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부유층의 여성이라면 당시의 다양한 진품 그림들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세계 곳곳으로 퍼진 과거 파리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의 실물을 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요. 실물의 '풀 밭 이의 식사'라는 그림과 다른 고전의 누드화들을 본 적이 없음에도 우리가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복제된 작품들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용된 '복제된 작품'이라는 단어는 지금 우리가 이 화면에서 보고 있는 위의 사진도 포함되며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실물이 아닌 복제된 이미지를 뜻하는 말이죠. 


현대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프린팅과 같은 이미지 복제 기술을 통해 실물을 보지 않아도 그 작품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실물 같은 이미지를 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그런 실물과 같은 복제품을 빠르게 다량 복제하는 것마저 가능하죠. 이런 현대의 새로운 기술적인 환경은 실물을 보지도 않은 체 보았다고 느낄 수 있고 혹은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버린 것인데요. 이와 같은 새로운 모습은 '대중'이라는 거대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냅니다. 대중이라는 단어를 '무엇인가'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실 저도 아직 이를 확실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아내지는 못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개개인 모여 형성된 대중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단어라는 것이 참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느껴볼 재미난 미술의 예는 있는 것 같은데요. 바로 대중적인 대중의 미술이라고도 하는 '팝아트'입니다. '팝아트'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그저 선을 이용해서 그린 심플한 이미지를 가진 미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그 심플한 이미지는 처음으로 팝아트에 도입되기 시작한 당시의 프린팅 기술이 뛰어나지 못했던 시대적인 이유도 존재했습니다. 약간 주제를 돌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파고 들어가 보면 이 그래픽 디자인의 그 시작점을 판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이 시각에서 판화는 기계화가 이루어지며 대량으로 이미지 혹은 텍스트를 프린트해낼 수 있는 기술로 발전이 이루어지는데요. 프린팅 역사의 초반 일러스트와 같은 간단한 그림들이 잡지, 신문 등에 함께 실렸던 이유는 이와 같은 일러스트와 같은 간단한 그림들은 큰 명암 표현 없이 간단하게 프린팅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코믹북이라 불리는 만화책도 이와 같은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그 명암 표현이 굉장히 단색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혹은 아예 명함이 표현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이런 간단한 프린팅 기술은 당시 대량 생산을 원했던 팝 아티스트들에게 상당한 흥미를 이끌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습니다. 앤디 워홀이 스크린 프린팅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마구잡이로 복제한 것과 같이 말이죠.


Part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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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