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을 알다. Part 2 [ 2 / 2 ]
- 에세이/미술과 사회
- 2017. 4. 24. 23:22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스프캔(Soup can) 이미지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진 프린팅 기술이 도입되면서 미술의 관객이 한층 더 넓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하는데요. 과거 한 명의 화가가 긴 시간을 들여 하나의 그림을 그렸던 것과는 달리 이처럼 빠르고 정확하면서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프린팅 기술이 미술에 도입되는 것으로 미술의 관객이 한층 더 넓어질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 것이죠. 과거보다 빠르게 많이 만들어지는 작품은 과거보다 많아진 대중이라는 새로운 관객과 만날 준비가 됐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 극소수의 작품이 극소수의 귀족층에게만 즐겨졌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팝아트가 시작되며 프린팅 기술을 통해 많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된 환경을 가진 것도 흥미로운 요소이지만, 한 가지 더 팝아트라는 미술에서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프린팅 된 이미지의 정체입니다. 앤디 워홀의 토마토 스프캔 작품은 어떻게 보면 스프캔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자면 오히려 토마토 스프캔이라는 말도 안 되게 친근한 존재가 작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 나라의 우수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계층과 가장 가난한 소비계층이 같은 품질의 물건을 소비하는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부유한 계층 & 가난한 계층)는 TV에서 코카콜라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또, 우리는 대통령이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리즈 테일러(1950,60년대 최고의 미국 여배우)도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도 같은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 ( 앤디 워홀, 1975 )
( What's great about this country is that America started the tradition where the richest consumers buy essentially the same things as the poorest. You can be watching TV and see Coca-Cola, and you can know that the president drinks Coke, Liz Taylor drinks Coke, and just think, you can drink Coke, too. ( Andy Warhol, 1975 ) )
앤디 워홀은 본인이 직접 집필한 책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합니다. 이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는 그 자본이 나눠놓은 모호한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장에서 찍혀져 나오는 같은 품질의 물건을 이용한다는 점을 언급한 문장이라 해석되는데요. 이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다양한 부분이 평등해졌다는 말을 뜻할 수도 있지만 소비라는 무기를 가진 대중이라는 새로운 힘 있는 계층의 탄생을 뜻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저 평등해진 것을 넘어서 대중이라는 거대한 계층이 거대한 힘까지 가지며 가장 높은 계층으로서 올라섰다는 것이죠.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오 쩌둥(Mao)
이와 같은 환경과 함께 의도적이었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팝아트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대중에게 익숙한 것들 혹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들이 등장합니다. 팝스타부터 뉴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중국의 과거 지도자 '마오쩌둥' 등 대중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이미지들이 작품으로서 등장하는 것이죠. 토마토 스프캔, 마오쩌뚱 혹은 마릴린 먼로와 같은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과거 전통적인 그림들에서 그려졌던 종교적인 신들과 여신들 혹은 왕의 초상화들과 비교하자면 왠지 모르게 그 기품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기도 한데요. 저는 이와 같은 시선이 과거 전통적인 그림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이 가진 하나의 작은 편견 혹은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그림에 등장하는 신과 여신 혹은 왕과 같은 존재들은 당시의 문화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연예인과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예인이라고만 말하면 그 의미가 모호하니 조금 더 풀어보자면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알고는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왕이라는 존재 그리고 신과 여신이라는 존재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는 존재하며 그 문화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에서 얼굴은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TV와 잡지 등을 통해 접한 연예인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림으로서 그려진 과거의 여신과 신, 왕 그리고 현대의 마릴린 먼로, 마오쩌뚱과 같은 전통과 현대의 그림들은 결국 당시 문화가 공감할 수 있었던 큰 이야기를 복제하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전통적인 그림들이 현대의 그림에 비해 기품 있어 보이는 이유는 전통적인 그림들에 등장하는 신과 여신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역사의 산물이라는 생각과 같은 오래된 것에 대한 환상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회화나 현대의 회화나 결국 미술은 만들어지던 당시 문화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익숙한 현재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런 익숙함과 함께 현재의 미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 각각의 시대에서 당시 사람들의 익숙함과 함께 만들어졌던 과거의 미술들은 과거의 미술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여 현재의 우리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과거의 미술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눈으로 보는 익숙함을 넘어서 각 과거 시대의 미술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쩌면 과거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그저 눈으로 보았던 것이라는 단순한 익숙함을 넘어 무엇인가를 알아가며 시대를 이해하는 과정은 과거의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술을 바라볼 때에도 해당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움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고 미래의 익숙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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