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 티니 (2) 아우라

금붕어 : 티니 일러스트

 

사실 이 아우라(Aura)라는 개념은 저도 처음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던 개념이었습니다. 미술을 설명하는 비이성적인 느낌의 단어들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한 시각이었는데요. 기운, 기, 차크라 등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아우라라는 개념을 처음 공부하던 마음에는 사실 ‘알고 비판하자.’라는 마음이 깔려있기도 했었죠. 하지만 공부를 이어갈수록 이 아우라라는 개념이 가진 비이성적인 느낌의 이미지와는 다른 논리적인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그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성적 매력에 빠져들었던 이 아우라는 개념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처음 내놓은 것인데요. 사실 이 개념은 사진과 영상 기술이 발명되는 것과 함께 시작된 예술품의 기계적인 복제가 일으킬 수 있는 예술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등장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예술작품은 오직 하나 밖에 존재할 수 없을 때 오직 하나라는 사실에서 오는 고유성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요. 이런 고유성, 진품성을 가진 예술작품들이 사진과 영상 등 기계적인 무한적 복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관객이 예술작품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 방문할 필요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변화는 당시의 철학자에게 예술의 위기로 받아들여 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우라라는 개념을 내놓은 발터 벤야민은 이 예술 위기의 핵심으로 아우라의 상실을 지적했죠.
 

금붕어 : 티니 전시 사진

 
개인적으로는 이 아우라라는 개념의 포인트를 '관객이 예술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에 방문할 필요가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부분에서 찾았던 것 같은데요. 발터 벤야민도 '아우라를 가진 작품과 함께 하는 실제 공간과 시간(Here and now)'을 아우라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설명했었습니다. 기계적으로 복제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아우라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 공간과 시간의 요소가 결여된 것이기도 했죠.
 
이 '금붕어 : 티니'라는 작품은 기계적으로 복제된 작품을 바라볼 때 나타난다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결여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이미지의 경우 사진 자체가 컴퓨터 파일로서 존재하게 되다 보니 진품으로서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모호해지는 상태가 되는데요. 컴퓨터 파일처럼 디지털화된 사진을 프린트할 수도 혹은 그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으면서도 모든 이미지가 진품이 되기도 하는 재미난 현상이 완성되는 것이죠. 이는 오직 하나만이 존재하는 진품의 작품과 한 공간에서 함께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아우라라는 존재가 사라질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아우라를 느끼는 기본 조건인 공간성(진품과 한 공간에 머물다.)과 시간성(진품과 한 공간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다.)이 충족될 수가 없는 환경이니 말이죠. 혹은 디지털 이미지를 복제한 모든 복제품이 진품으로 가정된다면 이 아우라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지기도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간성과 시간성의 결여와 함께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된 아우라가 작품 관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는데요. 이러한 의문이 '만약 아우라 자체가 애초에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에서 온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또 다른 궁금증을 낳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이 예술가의 아우라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금붕어의 아우라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만든 것이죠. 애초에 큰 가치가 없는 아우라가 담긴 예술 작품을 기계적으로 복제해놓는다면 시간성과 공간성의 결여와 상관없이, 애초에 아우라를 느끼든 느끼지 않든 큰 상관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생각이 조금 더 발전하여 살아있는 금붕어의 아우라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금붕어 아우라를 빌리는 것으로 시간성과 공간성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보자는 마지막 구상에 도달했던 것이죠.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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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