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스페이스(Project : Space)

프로젝트 : 스페이스(Space)


이 작품들은 순수미술을 정규 학과로 선택한 두 번째 학기의 첫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온 작품들입니다. 당시 과제의 이름이 '프로젝트 : 스페이스'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파운데이션 코스에서 대학의 정규코스(BA) 진학을 위한 인터뷰를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하죠. 프로젝트 스페이스라는 이름과 같이 원하는 장소를 하나 정하고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라는 파인아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제 자취방을 선택해버립니다.



그렇게 방을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으로 지정해놓고는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시작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가 시작한 것이 방의 사진들을 부분부분 찍어서 연결해보는 시도였는데, 이런 시도를 하던 중 '내 방은 세상이다.(My room is the world where we live.)'라는 재미있는 컨셉을 하나 정해버리죠. 그렇게 내 방을 세상이라고 가정하는 컨셉과 함께 부분부분 찍어서 연결한 사진을 보고 있자면, 좁은 지구에서 땅을 나누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런 세상에서 나가는 유일한 통로와 같이 느껴지는 '문'이라는 존재도 당시에는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가치(The value what we don't have) 2013, 01


방의 부분부분을 찍고 연결하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사실은 사진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로 모아놓은 사진은 그 경계들이 많아지고 사진의 형태는 점점 무너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영토를 나누면 나눌수록 엉망이가 되어가는 듯한 세상의 모습을 보는 듯도 했죠. 그러던 시기에 이런 세상의 유일한 탈출구 같이 보였던 '문'이라는 존재는 '왜 우리는 이렇게 작은 곳에서 이렇게까지 경쟁하고 다투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밖으로 나가버리자!'라는 메세지 성격의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자니 그 정의감에 가득한 느낌과 간단한 아이디어가 쑥스럽기만 한데, 이런 쑥스러운 아이디어와 함께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이 일그러진듯한 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향해서 나가자는 의미로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가치(The value what we don't have)'라는 제목을 붙여놓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세상 밖의 가치에 대해 집착할수록 프로젝트는 점점 진행이 무뎌지기만 했습니다. 세상 밖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이 생각들이 당시 뭔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오류가 무엇인지 찾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죠.


고민을 통해 찾아낸 오류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세상 밖으로 나가자고 외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이 공간뿐이라는 사실이었죠. '사실 우주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은 오직 지구뿐이다.'라는 지구방위대의 기운이 서린 아이디어가 다시 한 번 쑥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어쨌든 이렇게 당시는 문 밖의 세상이 아니라 역시 문 안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 공간을 버리고 나가버리자고 말하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의 소중함을 망각한 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되죠.



     

    가치 혹은 무가치 (Value or not) 2013, 02


그리고 그런 반성과 함께 만들었던 작품이 바로 이 헬멧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그냥 밖으로 나가자고 외치던 제 자신의 모습을 앞을 볼 수 없는 헬멧을 만드는 것으로 표현해봤죠. 눈구멍을 만들지 않아서 쓰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으로 그 안과 밖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던 갈등과 사실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을 담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사용하던 제 로고 코끼리도 눈에 띄고 개인적으로 괜히 추억이 느껴지는 작품이네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가치 (The value what we have) 2013, 02


인터뷰 날짜가 다가오면서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생각들을 담아보는 의미로 제작해본 작품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거대한 크기의 작품인데요. 작품은 크게 칼같이 나눠진 노란색 부분과 둥글 둥글한 라인을 가진 보라색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중앙에 철사로 만들어진 둥그런 물체가 있죠. 칼같이 나눠진 노란색 부분은 간단하게 국경을 나눠놓은 우리의 모습을 표현했던 것인데요. 둥글둥글하게 나눠진 보라색 부분은 반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꽃의 모양을 본뜨는 것으로 가치의 심볼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보았죠.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철사로 만든 둥근 물체는 이전의 프로젝트로 진행한 '페이스리스(Faceless)'에서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와 우리 개개인을 표현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의 가치와 우리들 사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고백하는 느낌으로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들은 눈에 띄기 위해 노력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당시는 정규 학사 과정으로의 진학을 위한 인터뷰를 앞두고 있던 시기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는 날 대학의 교수들이 참관하여 학생들을 뽑아가는 이벤트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죠. 그래서 더더욱 과감해지는 것에 집중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도 어쩌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당시의 부담감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의 뒷배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 자신의 생각과 의도가 완전하게 담긴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 부끄러운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낸 거대한 작품에 대한 시도가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추억이 담긴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개인적으로도 참 쑥스럽고 부끄러우면서도 추억이 솟아나는 작품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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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