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와 승리자(Loser and Winner)

패배자(Loser) 2013, 03


'패배자와 승리자(Loser and Winner)'라는 제목을 달아놓은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지난 시리즈 '프로젝트 : 스페이스'의 생각을 조금 더 연장해 보았던 작품들입니다. 딱히 현실에서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 오직 그래픽을 이용하여 작업한 작품들이죠. 사실 보관 장소가 많지 않은 유학생 처지로 인해 공들여 제작한 작품들을 반강제로 폐기한 이후 조금씩 대형 작품이나 3D 형태의 작품 제작을 많이 기피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자니 은근히 서글프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과거의 작품 중에 하나여서 그 당시 서글펐던 환경적인 요소가 이런 그래픽에만 치중된 재미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승리자(Winner) 2013, 03


'프로젝트 : 스페이스'라는 지난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던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시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 단계에서 과거 유럽 강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제국 주의의 역사로 인해 국경이 인위적으로 나눠져 있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로 잰 듯이 나눠져있는 국경들도 신기했고, 이런 지역적인 특징들을 고려하지 않고 나눠버린 국경으로 인해 나타나는 독특한 지역적인 분쟁도 흥미롭게 다가왔죠. 국경이 지나는 한마을에서는 앞집과 뒷집의 국적이 달라지는 웃기지만은 않은 상황도 펼쳐진다고 전해집니다. 한마을에서 함께 살아왔던 이들이지만, 국경이 나눠지는 것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색을 가져버리고 분쟁하게 되는 독특한 현실이 찾아오는 것이죠.


결국 다 같은 사람인데 서로의 민족, 국가, 지역이라는 특징들과 함께 각자의 색을 나누고 분쟁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또 이런 여러 국가와 지역들의 분쟁을 그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도 독선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개인적으로는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고 믿는 생각도 있었기에, 그저 이런 분쟁의 모습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는 것으로 작품을 보는 분들과 함께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작품을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의 첫 번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승리자(Winner)'라는 작품이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싸우다 결국 마지막에 운이 좋게 남은 이가 승리해버린다는 조금은 허무한 과정과 함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달아보았는데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각종 분쟁들의 허무함을 약간의 비꼼과 함께 표현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 작품에 입혀져 있는 색들이 특정 분쟁 지역이나 집단, 국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는 하는데, 작품에서 사용된 색들은 편을 가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무작위로 선택된 색들에 불과합니다.


패배자(Loser)

그리고 다시 한 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런 분쟁의 허무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작한 작품이 바로 이 '패배자(Loser)'라는 작품입니다. 앞서 승리자로서 환호하고 있던 빨간색 일러스트를 패배자로 반전 시켜놓은 작품인데요. 분쟁 끝에 승리하여 환호하고 있던 이도 결국 순식간에 패배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끊임없는 분쟁의 허무함을 다시 한 번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승리자는 현재의 승리자에 의해서 패배자가 되고, 그렇게 승리의 환호를 외치고 있던 새로운 승리자는 또 다른 이에 의해서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끊임없는 분쟁의 허무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었던 것 같네요.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국가와 집단들이 다양한 이유로 전쟁 등을 통한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모든 분쟁들을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결론짓는다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투쟁하고 있는 그들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이기만 한 모습인 것 같았죠.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분쟁하고 대립하는 것의 끝이 결국 허무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분쟁과 대립이 일어나는 이유와 원인을 생각하고 고치는 것으로 허무하고 무의미한 충돌을 멈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 일수도 있겠죠. 어쩌면 이 작품은 몇 년 전 제 자신의 은근한 독선적인 모습과 함께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기도 한데요. 조금은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생각들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던 생각이면서 한 번쯤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생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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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