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은 미술작품이다.

'미술작품은 미술작품이다.'라는 제목과 함께 이야기해드릴 이 새로운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미술적인 큰 변화를 가지고 왔던 출발점에서의 작품들입니다. 시작은 친구분과의 작은 논쟁에서 시작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술’에 대한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작품들이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친구와의 작은 논쟁으로 시작된 2014년 초의 이 작품들은 ‘미술 작품으로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방향의 작품 성향을 탄생 시켰고 지금 현재(2016년)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미술 작품으로서 대중들에게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이 작품들의 방향은 어쩌면 블로그와 라디오 등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미술을 풀어놓고 싶어 하는 제 개인적인 성향과도 너무나 잘 맞는 작품 성향인 것 같은데요. 오늘은 이렇게 저에게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찾아온 이 재미난 작품들의 시작점인 친구와의 논쟁부터 차근차근 그 탄생 과정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려볼까 합니다.


작품 '탄생에서 탄생으로(Births)'


친구와의 논쟁은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린 ‘탄생에서 탄생으로’라는 작품과 함께 시작이 되었는데요. 이 작품은 지난 글에서 소개해드렸던 것처럼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장난감 모형들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배치하는 것으로 당시의 제 생각을 표현한 설치미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의 논점은 간단했는데요. 바로 제가 이 작품을 위해서 구매한 장난감 모형들을 직접 제작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혹은 장난감 모형들을 구매해서 작품을 만들 특정한 이유가 존재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제 생각, 개념이 이미 존재하니 장난감을 구매할 특정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친구분 : 그래서 넌 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장난감 모형들을 살 이유가 있었어?

Dohny(본인) : 아니요, 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니, 그저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을 찾기 위해서 남대문을 돌아다니다가 ‘이게 좋겠다.’ 싶어서 구매했죠.

친구분 : 넌 포인트를 놓친 거야. 넌 그 장난감 모형을 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어야 했어.

Dohny(본인) : 엥? 그럼 누나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와 붓, 물감을 구매하는 이유가 있으세요?

친구분 : 그건 다른 거지!


정통 화가의 성향이 강했던 친구와의 주장 중에서 가장 인정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림’과 ‘설치미술’을 다른 미술 작품으로서 바라보는 친구의 취향이 표현된 ‘그건 다른 거지!’라는 부분이었는데요. 사실 그림을 조금 더 가치 있는 미술로서 바라보는 시각은 그림을 그리는 많은 화가 성향의 미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런 화가 성향의 미술가들과 정반대에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개념미술 성향의 미술가들이 많은 충돌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위의 대화도 어쩌면 화가 성향의 친구분과 개념미술 성향의 저 사이에 벌어진 의견 충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한국 문화의 특성상 한 살 많은 나이를 가지고 있는 친구분이 어린 동생인 저에게 조언을 하는 분위기가 연출이 되면서 제 개인적인 미술 성향이 묵살되는 것에 분한 감정을 느끼면서 이 작품 시리즈가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정확하게 정리하자면 ‘그림’이나 ‘설치미술’이나 결국은 모두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작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성향과 취향을 작품으로서 보여주자는 목적으로 이 작품 시리즈는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이런 목적을 위해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논쟁 중 나온 친구분의 말을 이용하여 ‘희화화’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저의 설치미술을 위해서 장난감 모형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과 친구분의 그림을 위해서 캔버스와 붓을 구매하는 것은 다르다고 친구분이 말씀하셨던 ‘그건 다른 거지!’하는 부분을 이용한 것이었는데요. 친구분의 말을 조금 비꼬아보자면 캔버스와 붓은 이유 없이 구매해서 작품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니, 그저 붓과 캔버스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조형물 혹은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캔버스를 재료로 이용한 작품들의 스케치


그런 생각과 함께 스케치했던 작품들이 바로 이 작품들인데요. 그저 캔버스를 이용한 조형물 형태의 작품으로, 첫 번째 스케치는 그저 캔버스를 피라미드처럼 쌓아놓는 작품 그리고 두 번째 스케치는 캔버스의 틀을 이루는 나무 구조를 살짝 변형하여 캔버스에 사용되는 천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작품을 스케치했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이후에 구상된 작품을 제작하게 되면서 제작되지 않고 스케치로서 남아있는데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 시리즈의 작품들의 기반적인 생각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에 소개해드리면서,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제작하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캔버스와 붓, 아크릴 물감, 장난감 모형 등을 모두 작품을 위한 똑같은 재료로 두는 이런 생각은 현대미술의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부분을 기반적으로 두고 있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성품이라는 뜻을 가진 ‘레디메이드’라는 철학적인 용어는 공장에서 찍혀져 나오는 물건들을 작품으로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성향의 화가들이 사용하는 붓과 캔버스, 물감들도 결국은 공장에서 찍혀서 나오는 ‘기성품(레디메이드 : Readymade)’들이니 공장에서 찍혀져 나오는 장난감 모형도 미술 작품을 위한 재료로서 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이 ‘레디메이드’라는 부분을 해석하는데요. 전통적인 성향의 화가를 비하하거나 무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붓과 캔버스, 물감, 장난감 모형들은 모두 똑같은 미술의 재료로서,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는 그림이나 설치미술도 결국은 모두 ‘미술작품’에 불과하다는 제 생각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작품 '그림 1(Painting 1)' & '그림 2(Painting 1)' (과거 사진으로 사진이 고르지 못 한 점 사과드립니다.)


이런 생각들을 조금 더 연장시켜서 ‘그림’이라는 미술작품의 매체로 확장 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들인데요. 위의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천으로 된 안경케이스를 붙여서 제작한 작품으로 저는 이 작품들을 ‘그림(Painting : 페인팅)’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천으로 된 안경 케이스를 물감 삼아 이용하며 캔버스 위에 그려낸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담아 작품 제목도 ‘그림 1&2’입니다. ‘그림’이라는 미술의 매체는 결국 ‘미술작품’이라는 미술의 범주 안에서 설치미술, 조형물과 같은 다른 미술 매체와 다를 게 없다는 앞에서의 생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사실 캔버스 위에 안경 케이스를 붙이는 것은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작품은 제작한 미술가인 제가 ‘그림’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작품은 아무 애매모호한 위치의 서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화가들이 물감 이외의 재료를 캔버스 위에 붙이는 행위로 그림을 그리는 작품도 굉장히 많이 존재하니 말이죠. 결국 조형, 그림, 설치미술 등등 다양한 매체와 분야로 나눠져있는 미술은 그저 그 사이의 경계가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나눠져있을 뿐, 결국 미술작품이라는 같은 범주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으로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다음으로 제작한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작품들은 조금 더 과감하게 이런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죠.


작품 '끝나지 않은 움직이는 그림 (Unfinished Moving Painting)'


작품 '끝이 난 움직이는 그림 (Finish Moving Painting)'


영상 작품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작품 시리즈를 제작하게 되는데요. 첫 번째 영상은 ‘끝나지 않은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첫 번째 움직이는 그림 시리즈 작품으로, 영상 위에는 영어로 ‘이것은 나의 움직이는 페인팅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그리고 있죠.’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문법과 뜻은 제대로 통하지만 영어로 읽고 있자면 그 뜻이 어색한 문장의 영어이기도 한데요. 사실 이런 어색한 영어 문장은 당시 많이 부족했던 제 영어 실력 덕에 얻어진 재미난 문장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그림.(Moving painting.)’이라는 단어에서 사용된 ‘Moving’이라는 단어가 한 편으로는 ‘감동 깊은’이라는 뜻으로도 통하며, ‘이것은 나의 움직이는 그림입니다.’라는 문장이 ’이것은 나의 감동 깊은 그림입니다.’로도 통하는 재미난 효과를 운이 좋게 얻기도 했죠. 이렇게 재미난 에피소드도 만들어준 이 ‘움직이는 그림(Moving painting)’ 시리즈 작품은 무작위로 움직이는 동그란 도형들을 배치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은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첫 번째 그림, 그리고 일정하게 움직이는 두 가지 색의 동그란 도형 두 개를 배치하는 것으로 ‘끝이 난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두 번째 그림과 함께 두 개의 작품이 제작이 됩니다. 캔버스 위에 천으로 된 안경 케이스를 붙여놓았던 이 전의 작품보다 조금 더 과감하게 영상을 틀어놓고는 그냥 ‘그림’도 아니고 ‘움직이는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형태의 작품으로 넘어온 것이죠. 미술작품은 결국 작가가 부르기 나름이라는 현대미술의 자유로운 성격을 잘 보여주며 이용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그림’이라는 미술작품의 분야와 함께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작품들을 ‘그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캔버스에 물감을 이용해서 실제 그림을 그리는 작품은 진행된 적이 없죠. ‘그림’이라는 미술의 분야이자 매체는 어쩌면 미술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분야로, 아마도 미술에서 가장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한데요. 이런 확고한 이미지는 ‘미술’과 ‘미술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저로서 가장 이용해먹기 좋은 미술 분야이기에 ‘그림’이라는 미술의 매체를 계속해서 이용하며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작은 논쟁으로 시작되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들은 위의 작품들과 함께 시작되었는데요. 현재는 이런 기반적인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며 조금 더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후 이어진 작품들도 다음 글들로 천천히 정리하며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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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