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에 대한 지능적 폭로, 마네의 '올랭피아'

이번 TV 미술 이유식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그림인데요. 이 그림은 1863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당시에는 천박하다는 멸시와 천시를 받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라고도 평가되며 커다란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작품은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어버리고는 경계선이 되어 전과 후를 나눠놓을 정도의 가치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데요. 이런 가치에 대한 이유도 굉장히 뜻이 깊은 작품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의 멸시와 천시를 받았던 이유가 참 재미있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검은 뒷모습을 폭로하고 있었기에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천시와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림 한 장을 통해서 당시 귀족을 향한 폭로가 이루어진 방법이 참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첫 번째 요소가 바로 그림 속 여인의 차림새인데요그림 속 여인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지만 목에 하고 있는 초커 형태의 리본과 팔에 착용하고 있는 팔찌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일하던 직업여성의 대표적인 차림새였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직업여성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으로 보수적인 특징을 가진 귀종 중심의 사회였던 프랑스에서는 멸치와 천시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문제는 당시의 직업여성과 귀족 남성들과의 은밀한 관계가 이 귀족들의 멸시와 천시 뒤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숨기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직업여성과 귀족 남성의 은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요소는 바로 직업여성 뒤에서 배달 온 꽃을 들고는 직업 여성에게 보여주는 흑인 노예인데요. 직업여성이 노예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은 금세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죠. 당시 직업여성이 흑인 노예를 거느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귀족의 첩으로서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그림이 공개되던 당시 프랑스의 귀족 사회는 겉으로는 여신과 같이 우아하고 고귀한 그림만을 인정하는 보수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뒤로는 직업여성을 첩으로 삼는 일이 굉장히 흔했다고 전해집니다. 겉으로는 여신으로서 그려지지 않은 여성의 그림을 천시하고 멸시하며 우아함과 고귀함만을 추구하지만, 뒤로는 직업여성을 첩으로 삼는 일이 흔했던 프랑스의 은밀하고 어두운 뒷모습이 존재했던 것이죠. 실제로 이런 어두운 사회의 뒷모습은 당시 프랑스 귀족 남성의 사망 원인 중 성병은 큰 비율을 차지하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에두아르 마네는 이렇게 그림 안에 직업여성과 흑인 노예를 함께 배치시켜 놓는 것으로 당시의 귀족 남성들을 향한 폭로와 비슷한 행위를 완성해낸 것입니다.


만약 그림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가 그저 여신 같지 않은 여인을 캔버스 위에 그려놓았다면 그림은 그저 당시 귀족들에게 천시와 멸시를 당했겠지만, 직업여성과 흑인 노예를 함께 배치해놓는 것으로 당시 귀족 남성들의 치부를 폭로하며 부끄러움과 분노를 감추고 있는 천시와 멸시를 만들어낸 것인데요. 그림 속에 이야기를 담아놓는 것으로 당시 귀족들에게 크게 한 방 날려주는 재미를 선사한 것이죠.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왼쪽)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오른쪽)


당시 프랑스의 귀족 남성을 조롱하는 에두아르 마네의 의도는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그림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며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그림은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가 말하던 이상적인 형태의 그림인데요. 두 그림을 보고 금방 눈치를 채실 수 있는 것처럼 마네의 올랭피아는 당시 사회의 이상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구도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둘의 구도가 비슷합니다. 누워있는 여인의 위치와 자세, 하녀들과 흑인 노예 그리고 현재 컴퓨터 이미지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올랭피아의 침대 오른쪽 위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하얀색의 강아지와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요. 구도 안에 여인과 하녀 그리고 동물은 거의 동일한 위치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메세지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마네는 '올랭피아'라는 그림을 통해서 아주 치밀하게 당시 귀족 사회를 향한 폭로를 이뤄내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결국 살롱전에 출품된 이후 귀족들의 천시와 멸시 속에서 구석으로 자리가 옮겨지는 수모를 당했는데요. 허례허식이 난무하던 당시 자신들의 숨은 치부를 폭로하고 있는 이런 그림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또 마네는 그림 올랭피아 속의 여인이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이들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려놓는 것으로 당시 귀족 남성들에게 참으로 강력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고도 학자들은 예상을 하는데요. 그림을 인상적으로 그리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그림에 참 어울리는 대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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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가 :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