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이면서 야한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은 '선호하지 않는다.' 정도의 표현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극도로 선정적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을 피하려는 경향을 가질 만큼 선정적인 이미지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 선정적이고 야한 이미지를 가진 작품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작가가 있었는데요. 바로 '앨런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작가의 전시회를 보고 나서였죠. 2014년 경이었던 것 같은데요. 영국의 왕립 아카데미(RA)에서 앨런 존스의 전시회가 열렸던 해였습니다. 전시회는 당연히 아주 선정적이고 야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요. 사..
이번 새라 미술 이유식에서는 '어린 왕자의 관점으로'라는 제목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어린 왕자의 관점으로'라는 제목은 사실 제가 작성했던 에세이 '어린 왕자의 관점으로'에서 온 것이기도 한데요. 미술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조금 더 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라디오를 함께해주고 있는 심군의 추천과 함께 제가 직접 작성한 에세이를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는 방식으로 이번 회 차를 진행해보았습니다. '어린 왕자의 관점으로'라는 에세이는 집의 특징들을 듣고 그 집의 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집의 가격을 듣고 그 가치를 판단하기만 한다고 말하는 어린 왕자의 구절을 떠올리면서 작성했던 글이었는데요. 작품을 바라볼 때 작품의 가격이나 역사적 배경 등의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을 떨쳐버리고 가끔은..
'혼란스럽다.'라는 단어는 어쩌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가지는 가장 흔한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방문하는 전시회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현대미술의 작품들은 처음 이를 접하는 이들에게 혼란 그 자체의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요. 사실 이런 혼란스러움은 현대의 관객들이 미술을 기피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하면서 캔버스에 그려지는 그림과 정갈하게 조각된 조각상처럼 정확하게 틀이 잡힌 매체만이 존재하던 과거의 미술을 동경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현대미술의 이런 혼란스러움은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새로운 특징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끔은 정말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미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모양있는 캔버스(Shaped Canvas)' 이 작품은 미국의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모양이 있는 캔버스’라는 작품입니다. ‘모양이 있다.’라는 수식어와 맞게 캔버스의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4개의 모서리를 가진 네모 모양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가진 캔버스들인데요. 캔버스 내부에도 간결한 선들을 반복적으로 그려주면서 단순함과 반복성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형태의 미술을 잘 완성해낸 작품입니다. 위의 설명을 읽고 있자면 우리는 이상한 모양의 캔버스를 미니멀리즘 등의 설명과 함께 큰 반감 없이 이를 하나의 미술작품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사실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재료에 불과한 캔버스를 요상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를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의..
최근 지인이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는 세 살 아이의 그림과 현대미술 작가의 그림을 비교하는 글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세 살 아이의 그림과 현대미술 화가들의 그림들을 랜덤으로 배치해놓고는 무엇이 고가의 가격을 가지고 있는 현대미술 작품인지를 맞추는 퀴즈 형식의 글이었는데요. 이 글이 현대미술의 그림과 세 살 아이의 그림이 왜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미학적인 질문보다는 현대미술의 그림을 조롱하고 희화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명확했지만,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저 조차도 세 살 아이의 그림과 현대미술 작가의 그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습니다. 비슷한 겉모습과 함께 왜 비슷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한 이 부분은 또 겉모습 만으로는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할 수 ..
최근 SNS에서 ‘돈이 들어오는 그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 그림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한 거부가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지며 크게 방긋 웃고 있는 얼굴과 많은 치아가 돈을 들어오게 해주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알려지며 부적과 같은 느낌의 그림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사실은 주술적인 그림을 그리는 거부가 아닌 평범한 유명 중국의 화가 ‘위에 민준(Yue MinJun)’의 그림입니다. 사실 저는 ‘돈이 들어오는 그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공유되고 있는 이 그림을 SNS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와 이 작가의 그림이 미술적으로 해석되는 방식과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돈이 들어오는 그림’이라는 타이틀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는데요. 타이틀이 거짓임에..
리차드 잭슨의 나쁜 강아지(Bad dog)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문화는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합니다. 독서와 게임은 둘 모두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이지만, 책을 읽으며 취미를 즐기는 모습은 게임을 하며 취미를 즐기는 모습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처럼 문화에 서열을 매기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잘못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취미로서 선택된 독서, 게임과 같은 문화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결정된 것이니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존중받아야 하는 개인의 취향과 함께 선택된 독서와 게임이라는 이 두 문화는 사회적인 시선에 의해 암묵적인 서열이 만들어지며 동일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
이번 TV 미술 이유식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그림인데요. 이 그림은 1863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당시에는 천박하다는 멸시와 천시를 받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라고도 평가되며 커다란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작품은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어버리고는 경계선이 되어 전과 후를 나눠놓을 정도의 가치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데요. 이런 가치에 대한 이유도 굉장히 뜻이 깊은 작품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의 멸시와 천시를 받았던 이유가 참 재미있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검은 뒷모습을 폭로하고 있었기에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천시와 멸..
글쓴이의 작품 '포토페인팅(Photopainting)'그림과 사진, 이 둘은 알면 알수록 참 오묘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을 들고 벽에 그림을 그렸던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마저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그림으로 인정한다면 그림은 인류가 탄생한 그 시기부터 함께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인데요. 그에 반해 약 200년이 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사진이라는 예술 속의 새로운 매체는 수만 년의 역사를 가진 그림이라는 예술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진이 가져왔던 그림의 거대한 변화는 사실 그저 변화를 넘어 그림의 역할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던 생존의 위협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는데요. 2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사진이라는 이 새로운 예술이 수만 년의 시간 동안 그..
일러스트레이터, 화가, 산업 디자이너 등 세상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설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고객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오직 그림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연중에 오직 그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그림이 가장 순수하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오직 그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은 화가의 그림을 아주 순수한 무엇인가로 보이게 만드는 배경이자 표현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그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라고 크게 묶어버린 이 영..
대학교의 졸업 전시회는 공식적으로 가장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졸업 전시회를 돌다 보면 영상 작품 등을 전시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아주 오래된 TV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작가들이 주를 이루는 졸업전시회에서 이제는 일상에게 보기 힘든 15살 이상은 먹어 보이는 오래된 볼록렌즈 TV라니 참 오묘한 조합이죠. 이런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에서 사용된 오래된 TV들을 보고 있자면 이 작가는 왜 화질도 낮은 오래된 TV를 영상 작품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는 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상을 화질이 낮은 TV를 이용해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영상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낙찰가 5840만 달러를 기록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오렌지색 '풍선개(Bolloon Dog)' 제가 기억하기로는 2014년 여름 즈음 제프 쿤스의 풍선개라는 작품이 약 719억(미화 5840만 달러 : 현재 환율 1232원)이라는 가격에 팔렸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한국에도 이런 사실을 담은 기사들이 나오며 미술이 간간이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는 했었죠. 그런 시기에 제 친형이 이 기사를 보여주며 ‘이게 말이 되는 거냐?’라는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이라는 짧은 답변을 하며 ‘원래 미술에는 원초적으로 순수미적 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